[윤대곤 목사 칼럼] 비판하지 말라

등록날짜 [ 2022-10-13 23:52:04 ]

사람 사이 갈라놓는 악한 마귀 궤계

성령 충만함으로 언행심사 주의해야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앞서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나 혼자 모르면 소외감을 느끼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을 쫓아가는 큰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는 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설교(산상수훈)가 나옵니다. 천국 시민이 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내용입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 말씀에는 인간이 축복받는 길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이지만,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말씀을 주신 목적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민족에게 침략당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고, 다시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지킨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는 이유는 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죄 문제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 심령에 완전하게 새겨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마5:20)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당시 613가지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키고 조상들이 전해 준 유전들까지 어떻게 하면 잘 지킬까 연구하며 치열하게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의로울 수 없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로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서 먼저 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보다 더 죄에 민감하여 하나님과 사이에서 죄를 찾고 또 찾아 죄를 내어놓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죄 된 모습을 말씀을 통해 찾고, 말씀을 통해 다 찾지 못하니까 그 이상의 것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찾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말하는 의의 기준은 ‘살인하면 죄’라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2절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살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하는 것, 욕하는 것, 무시하는 것도 죄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살인하면 죄’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살인에 이르도록 사람과 사이에서 미워하고 무시하는 관계를 절대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에서 비롯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하기 전에 ‘분 내지 말라’ 하는 것은 행동이 죄가 아니라 분내는 심정에서 죄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분 내는 것을 너무나 합리화시킵니다. 군대나 직장생활 등 서열화된 곳에서는 윗사람은 분을 내도 되고, 아랫사람은 다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 형제 사이에서도 분을 내는 것이 다반사이니 모든 인간은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분 때문에 나타나는 나의 언행심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죄가 전가되고, 분이 분을 낳고, 결국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살인만이 죄가 아니라, 살인에 이르게 하는 마음과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모습이 다 죄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님과 다른 모든 것이 다 죄라고 인정해야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고 이 죄가 완전히 해결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했다’는 의가 아니라 ‘나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애통해하는 회개입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찾아내 놓고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속죄받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13절에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을 비판하지 말고, 판단하지도 말고, 더 나아가서 비판받을 만한 일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전할 때 사고를 막으려고 ‘방어 운전’을 하듯, 신앙생활 할 때도 혹시 나의 말과 행동 탓에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그 틈을 타서 사람과의 사이를 갈라놓고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살인까지 일어나도록 만들기에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당연히 갈등이 있고, 또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겠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염려케 하는 것, 서로 부딪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모든 사건이 죄가 되고, 예수님은 그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우리 죄를 대속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험한 말도 할 수 있고, 원망과 시비가 붙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하나가 다 죄입니다. 우리는 세상 법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법으로, 성령의 법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의 모양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죄를 알고 보고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 따라가는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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