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구시렁 엄마와 개미가 되고픈 아들

등록날짜 [ 2019-02-21 03:54:14 ]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들에게
내 삶의 모습으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구시렁대다 신앙생활 사고 징후 방관
기도로 ‘하인리히의 법칙’ 예방을 다짐


1월 초에 다이어리 하나를 얻었다. 다이어리 맨 뒷장에는 ‘하인리히의 1:29:300 법칙’이라며 자세한 설명이 기록돼 있었다.


‘1번의 대형사고 전에 29번의 유사한 작은 사고가 있고, 그 사고들에 앞서 300번 이상의 사고 징후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빨간 글씨로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도미노처럼 사고로’라는 경고도 적혀 있는데 이걸 보면서 신앙생활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부터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불평거리가 쌓이면 불만을 가지고, 이 불만이 쌓여 불신이 생기고, 결국 믿음의 자리를 탈선하는 지경에 이른다. 예배드리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데 가 있고, 기도하고 있지만 뜨거움 없이 중언부언하고, 타성에 젖어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고 싶다면, 지금 나는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겠다. 300번 이상의 사고 징후쯤에 있는지, 29번의 작은 사고 지점쯤인지.


그래, 솔직히 말하자. 나는 지금 사고 징후에서 작은 사고 지점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다시 말해 대형사고를 앞두고 있다는 말이다. 시작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였다.


퇴근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교회 근처 식당에서 정신없이 저녁을 해결한 뒤 금요철야예배를 드리려고 예루살렘성전 5층으로 향했다. 자모실로 가기에는 많은 나이, 본당에 들어가기에는 눈치 보이는 7세, 4세 두 아이를 데리고 대성전 꼭대기층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한 중년 부부가 뒷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는 거다. 아이들이 사부작거리니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었다. 예배 시간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설교 말씀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못했고 결국 작은 아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혼을 냈다.


네 살짜리 둘째 아이를 혼내고 나니 마음이 심란했다. 그 후부터 예배드리러 가도 곱게 보이는 게 없었다. 찬양부터 축복기도까지 은혜 넘치던 예배 시간도 ‘너무 길어’가 돼 버렸고 예배 질서를 위해 안내하는 예배위원들의 정당한 요청도 ‘기분 나빠’가 돼버렸다. 몇 주를 이렇게 “지친다” “힘들다”며 구시렁거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느닷없이 이러는 거다. “괜히 태어났어. 차라리 개미가 될걸.”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왜 개미가 되고 싶은 건데?”라고 물으니 “지옥이 너무 무서워. 개미로 태어났으면 지옥 안 가도 되는데” 하는 거다. 아이가 죄가 뭔지 알게 되면서 죄짓지 않을 자신이 없어 하는 소리였다. 나도 어려서부터 마음 한편에 ‘하나님은 왜 천국, 지옥을 만드셔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가?’라는 불만이 있었는데, 벌써 내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구원받은 기쁨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또 얼마나 즐거운지 내 삶으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내 속상한 마음에 매몰돼 신앙생활의 사고 징후를 방관한 것이다.


대형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듯이 나 한 사람의 영적 사고로 자녀들과 다른 이들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사고 징후와 작은 사고만 잘 알아채도 막을 수 있는 것이 대형사고 아닌가. 사고 징후가 보인 그날에 빨리 기도해 더 큰 사고를 막았어야 했는데. 더 기도해야겠고, 더 너그러워져야겠고, 더 사랑해야겠고 더 안아줘야겠다. 우리 아이들도, 내 믿음의 형제들도.



/김은혜 집사

82 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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