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 삶의 열매는 선할까, 악할까?

등록날짜 [ 2020-06-13 10:36:23 ]

과거 공무원 시절에 건축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일과 대부분이 민원상담이었다. 하루는 민원을 접수하러 온 사람이 대뜸 “○○교회 아무개 집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며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집사가 내 아내인데 조용한 데서 상담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혹시 그 건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건물’은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 상가였는데, 상가 건물 일부가 법정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지어져 상담을 요청한 민원인의 땅과 10㎡(약 3평) 정도 맞물렸다.


이런 경우 해결 방안은 두 가지다. 상가 건물을 잘라 내든지 법정 거리 확보에 필요한 만큼 땅을 매입하는 것. 하지만 입주를 앞둔 상황에서 건물을 잘라 내거나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시공자는 땅주인이 요구하는 금액으로 매입하게 된다.


나를 찾아온 민원인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집사 남편이었고, 그 집사는 우리 집사람과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다. 그는 재래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데 규모는 작아도 알짜배기라 여유자금으로 부동산을 사 놓은 것이다.


상담 결과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아파트 입주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민원이라기보다는 경고 수준의 부탁이었다. 아파트 시공자도 “땅주인이 약점을 이용해 과도한 금액을 요구한다”며 행정기관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사유재산권 행사에 관여할 수 없고 칼자루는 땅주인이 쥐고 있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입주 날짜가 미뤄지자, 아파트 입주예정자의 재산권과 주거권 보호도 고려해야 했다. 땅주인에게 “고무줄도 계속 당기면 끊어지니 적당한 선에서 해결했으면 합니다”라고 은근히 압박했지만 끄덕하지 않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맞는지 속으로 생각하며 혀를 찼다.


결국 법정 거리 확보에 필요한 토지 10㎡(약 3평)를 시세의 수십 배 금액으로 사면서 아파트는 사용 승인이 났다. 그는 이후 사업을 한다며 정육점을 팔더니 얼마 못 가 전 재산을 소진했고 이혼하고 건강도 악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장 상사로 모시던 분이 여가로 작게 농사를 짓는데, 같은 과일도 나무마다 맛과 크기가 다르고, 밭도 고랑에 따라 열매가 제각각이라고 한다. 우리 생김새가 다르듯 살아가는 방법도 각각이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윤리 가치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주셨기에 구원받은 백성은 삶에서 이를 증거하는 열매가 드러난다. 선한 행실로 구원받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이가 악하게 살 수는 없다. 내 삶의 증표가 무엇인지 늘 상고(詳考)해야 하는 이유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윤웅찬 집사

14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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