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복 있는 삶

등록날짜 [ 2021-02-16 19:03:21 ]

형은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지역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 비록 건물은 낡았지만 교차로에 있는 자기 땅, 자기 건물에서 설비업을 하며 자녀들을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에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형이 사는 곳은 최북단 시(市)로서 행정구역 전체가 38선 이북에 위치한 수복지구다. 민간인 통제선까지 가는 데 차로 1시간도 걸리지 않으니 군사적ㆍ지리적 요인으로 개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20여 년 전인 1998년 6월, 지금은 작고하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더니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됐고, 그해 11월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그 출발지인 강원도 속초에 형이 살고 있었다.


부동산 붐이 일었다. 조그마한 해안도시에 콘도미니엄과 오피스텔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외지투지꾼들이 모여들고, 주말이면 관광객이 붐볐다. 시가지에는 날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다.


형도 상가를 짓기로 했다. 설계업자가 말했다. 건물은 지을 때 제대로 지어야 한다고. 시공업자도 말했다. 이왕 짓는 거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지어야 한다고. 나중에 증축을 하려면 건물이 볼품없이 되므로 맞는 말이기는 했다. 형은 평생에 한 번 짓는 것이니 제대로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설계비와 공사비가 처음 계획을 크게 넘어섰다. 은행에 대출을 받고 준공되면 세를 놓아 갚기로 했다.


대리석과 유리로 절묘하게 조화된 멋진 건물이 완성됐고 많은 사람에게 축하도 받았다. 남은 인생은 비단길만 걸으면 됐다.


그러나 몇 년 뒤 금강산 관광 중단과 함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형의 건물에도 불이 켜지지 않은 층이 많았다. 은행과 빚쟁이들로부터 숱한 날을 시달렸다. 지난날 허름한 점포에서 가족과 웃으면서 부지런히 살던 그때가 그리웠다.


빚잔치를 했다. 내 삶을 보장하고 나를 높여 주리라 믿었던 건물은 사라지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돈도 돈이지만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고향을 떠나 아는 이 없는 곳에서 건물 경비를 하고 있다. 형은 모든 것을 잃고 내려놓은 지금이 행복하단다.


주님께서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는다”(창3:19)고 하셨다. 최근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 땀 없는 수익 내기에 광풍이 불고 있다. 욕망을 좇는 불나방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세상 부요에 빠진 미련한 부자보다 비록 육신의 고난이 있을 지라도 거지 나사로의 삶이 복 있다고 하신다. 만족(滿足)은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임을, 육신의 때보다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윤웅찬 집사
12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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