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조선의 첫 순교자

등록날짜 [ 2021-04-22 21:24:47 ]

1866년 미국 제너럴셔먼호는 조선과 교역할 상품을 싣고 평양으로 왔다. 8월 27일 대동강 포구에 정박한 후 조선의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며 총과 포를 쏘아 댔다. 그러다 9월 2일 양각도 모래톱에 좌초했고, 셔먼호의 포격에 조선인이 죽자 평양감사는 셔먼호를 불태웠다.


당시 이 배에 통역으로 탑승하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는 한문 성경 500여 권을 하나라도 더 조선에 보급하려고 사력을 다해 강가로 성경책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조선군에게 생포되어 스물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순교했다. 우리나라에 온 첫 번째 선교사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병사 박춘권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들었다. 칼로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받으라고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받아 왔노라.”


박춘권은 제너럴셔먼호 화공 작전 때 공을 세워 높은 벼슬에 올랐다. 그 후 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박춘권은 60대에 마펫 목사에게 침례를 받고 영수(領袖)의 직분을 받아 교회를 섬기며 여생을 마쳤다. 영수는 현재 전도사 격인 조사를 돕고 교회를 돌본 선교 초기 평신도 직분이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옆에서 구경하던 12세 최치량은 한문으로 된 성경 3권을 주웠다가 서양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질 수 없어 영문 주사였던 박영식에게 건넸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박영식은 한문 성경 종이를 뜯어 벽을 도배했다. 나중에 성인이 된 최치량이 이 집을 사서 개조해 만경대 석호정이라는 여관 겸 주막으로 운영했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가 성경으로 도배한 방에서 숙박을 하게 됐고, 벽이 한문 성경으로 도배된 것을 본 마펫 선교사는 이 집을 매입해 널다리골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후에 길선주 목사가 대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교회로 유명한 장대현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관 주인 최치량은 평양의 초대 기독교인이자 장대현교회 장로가 되었다.


사람이 아무리 잘 짜 맞춘다고 하더라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와 순교한 첫 개신교 선교사 토마스는 복음의 씨앗, 즉 한 알의 밀알이 됐다. 토마스 선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은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가 목숨을 걸고 던진 성경 덕분에 조선의 영혼이 살아난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우리도 이처럼 한 알의 밀알과 같은 복음의 씨앗이 되어 하나님의 작품 속에서 아름답고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소망한다.



/오태영 안수집사
교회복지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6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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