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골방 안에서 상념(想念)

등록날짜 [ 2010-12-22 13:28:35 ]

갑작스럽게 당한 막막한 고립을 겪어 보니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껴

며칠 전 서점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강연회를 듣고 평소보다 늦게 귀가했다. 한파 특보를 몰고 온 차가운 바람을 등지고 퇴근길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갔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가벼운 옷차림으로 종이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고 벨을 누르려고 하는데 덜커덩하더니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온갖 벨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자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지?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 생각이 들자 가장 먼저, 천국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회개했다. 평상시에 하나님과 관계를 소홀히 한 부분을 찾으면서…. 가장 완벽한 골방이었다. 이어 가족들 생각이 났다.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아내와 아이한테 소홀한 것은 없었나. 아직 아이가 자라려면 멀었는데. 내가 죽으면 탈 수 있는 보험이 얼마나 될까. 그것으로 생활은 할 수 있을까. 멀리 남극에서 침몰한 인성호 사건도 생각 났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족들이 슬픔에 빠졌는데 내 가족도 그렇게 되는 건가.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상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마침 경비원도 순찰을 하는지 비상벨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문을 요란하게 쳐도 적막감만 돌 뿐이었다. 밤이라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얇은 옷차림으로 나왔기 때문에 추위가 느껴졌다. 노숙 경험담을 들어본 기억이 났다. 신문지를 덮으면 따듯하다고 한 말이 생각 나서 재활용으로 분류해놓은 신문지를 꺼내 덮었다. 조금 따듯한 기운이 유지되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나도 오늘 밤을 여기서 보내야 하나 싶었다.

아침에 두레 편지에서 본 북한 어린이에게 내복 보내기 캠페인이 생각났다. 북한은 더 추울 텐데. 가뜩이나 연평도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서 굶주리고 추위에 고생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무사히 여기서 귀가한다면 내일은 내복 한 벌 값이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무렵, 아래층에 사시는 분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고 경비원을 찾아 연락해 주었고 우리 집에도 알려주었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 A/S 기사가 도착했고 드디어 구출되었다. 내가 갇힌 지점은 5층과 6층 사이. 골방 안에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참고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뛰거나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중간층에 비상 정지할 수 있다. 대처방법은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비상벨을 누르고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억지로 문을 열고 탈출하려는 시도는 더 위험하다. 기다리면서 안내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생각을 정리하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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