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차가운 전쟁의 기억

등록날짜 [ 2010-12-29 15:07:40 ]

흉흉한 소식으로 올겨울 유난히 추워
모든 염려 예수께 아뢰며 평안 얻어야

최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안내문이 붙었다. 비상상황 시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어떤 물품을 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지 등에 대한 안내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연평도 공격 탓에 생긴 대비책이다. 자세히 읽어보니 비상시에 챙겨야 할 물품이 우리 집에는 대부분 없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비상상황이란 당연히 전시상황을 말한다.

그런 내용의 안내문이 붙자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하다며 걱정스러운 얼굴빛이다. 이웃의 한 애기 엄마는 항상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있다면서 전쟁이 터지면 무조건 남쪽으로 갈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토로했다.

전쟁의 소문이 들려오면 친정엄마는 또 그때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꺼내신다. 그 기억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생생한 것일까.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친정엄마는 ‘전쟁’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신다.

같이 나물 캐러 다니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폭격으로 수도 없이 죽었다는 6.25. 그나마 총알이 목덜미를 스친 한 친구는 구사일생으로 살았는데,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았을 즈음에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병원 문턱조차 밟을 수 없던 그 시절, 탄피 상처를 제대로 소독하지 못한 탓이다. 의학이 첨단으로 발전한 지금에는 정말 무식하게 들리지만, 짚으로라도 총알이나 탄피가 지난 자국을 박박 문질렀어야 한단다.

전쟁 때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함부로 집어 들지 말아야 한단다. 한 친구가 볼펜 같은 것이 길에 떨어져 있어 예쁘다 주워서 집으로 갖고 들어갔는데, 방 안에서 그것이 터져 함께 있던 엄마와 오빠가 각각 한쪽 눈을 잃었고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 게 왜 길에 떨어져 있느냐고 묻자 “무조건 죽이려는 거지. 죽이려고 내려왔는데”라며 엄마는 목소리를 높인다.

연평도 사격훈련 소식으로 마음이 뒤숭숭하던 날, “저놈들한테는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 해”라고 중얼거리다가 잠든 칠순 노모. 이튿날 아침 일어나시자마자 “꿈속에서 전쟁이 났는데, 아이고~ 피난 간다고 짐을 싸려고 이것 들었다 놓고 저것 들었다 놓고 내내 그랬어”라며 마른침을 삼키셨다.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 때문에 이 겨울 추위를 더욱 타는가 보다. 흉흉한 전쟁 소문으로 차갑게 얼어버린 가슴을 무엇으로 따뜻하게 할까. 이 특별한 추위와 두려움, 아픈 기억들 고스란히 내려놓을 곳이 있으니, 바로 진정한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친히 오신 예수 그리스도! 비록 세상은 알지 못하여 소동하였고, 기어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용서하셨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모든 염려를 그분 앞에 내려놓고 이 겨울 추위를 그분의 사랑으로 이겨 보자. 나보다 더 추운 이웃을 향해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담아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위 글은 교회신문 <22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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