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00·上)]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한 마을 ‘벳바게’

등록날짜 [ 2021-02-07 21:33:50 ]


1. 벳바게교회 내부와 성화 모습. 성화에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2. 윤석전 목사가 벳바게교회 안에서, 예수께서 벳바게에 계시던 중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끌고 오도록 말씀하신 것(마21:2~3)을 설명하고 있다.



3.  벳바게교회.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나귀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신 일을 기념해 1883년 세워졌다.



벳바게 위치. 벳바게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과 감람산 동남쪽에 있는 베다니 마을 사이에 있다.


벳바게라고 추정하는 아랍인 마을 ‘아부 디스(Abu Dis)’ 전경.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이고, 검문검색이 삼엄해 접근하기가 어렵다.

 
현재 감람산 동남쪽의 아랍 마을 ‘아부 디스’
‘벳바게’는 ‘설익은 무화과나무 집’이라는 뜻
공생애 마치기 위해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수께서 “나귀 끌고 오라” 하자 제자들 순종
주님 말씀 즉각 순종한 모습 아름답고 귀해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성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어미 나귀나 조랑말을 타고 성에 들어가시거나 혹은 예루살렘과 가까워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길을 왜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타고 가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출발하신 장소, 벳바게(Bethphage)로 가 보겠습니다.
 
벳바게는 현재 감람산 남동쪽 경사진 곳에 있는 아랍인 마을 ‘아부 디스(Abu Dis)’라고 추정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신 일을 기념해 이곳에 벳바게교회를 세웠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성화(聖畫) 중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그린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한 왕의 모습을 보이시며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다.
 
윤석전 목사: 지금부터 2000년 전 유대 민족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드디어 로마가 무너지고 메시아인 예수께서 국권을 회복해 이스라엘을 지배하는구나!’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영혼의 구원주가 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군중의 환호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기 전 머무신 벳바게가 어느 곳에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경에 많이 알려진 벳바게는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불과 2~3㎞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지만 검문검색이 심해서 답사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유로 벳바게 인근의 베다니와 마찬가지로 성지순례를 하는 분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지도를 보면 지중해 연안의 해안 평야지대에서 동쪽 예루살렘으로 올수록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도 높은 지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과 감람산 동남쪽에 있는 베다니 마을 사이에 벳바게가 있습니다.


벳바게는 ‘설익은 무화과나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들레헴’이 ‘빵 굽는 집’이라는 뜻인 것처럼 ‘벳’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집’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바게(파게)’는 무화과를 말합니다. 파게는 무화과 중에서도 처음 열리는 무화과를 말합니다. 그만큼 무화과가 많이 나는 동네라는 뜻이 ‘벳바게’ 지명에 담겨 있습니다.


이곳 벳바게에는 비잔틴 시대에 이어 십자군 시대에도 교회를 세웠고, 이후 1883년에도 옛 교회 터 위에 교회를 재건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종려주일에는 요즘도 벳바게 근처에서 시작해 감람산과 겟세마네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행진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끌고 오라 하셨을 때, 나귀 주인과 미리 약속해 두지 않았다면 제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서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니 나귀를 사용하실 수 있지만, 나귀 주인으로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더 여쭙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제자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박영철 교수: 성경에서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주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2~3).


이때 두 제자의 순종하는 태도가 참 아름답고 귀합니다. 남의 것을 그냥 끌고 오는 것일 수도 있는데 “곤란한데요”, “어려운데요”라고 주님께 토를 달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즉시 순종한 제자들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면 제가 주님 말씀에 바로 따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주님 말씀에 순종할 때, 나귀 주인이 허락해 새끼 나귀를 끌고 오는 모습에서 주님의 제자로 자처하는 우리도 이렇게 순종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라”, “하지 말라”고 주님이 당부하시는 게 많지만, 우리는 “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거역하면서, 그 말씀을 무시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에 늘 순종해 하나님께 제자들처럼 쓰임받는 우리가 되어야겠다는 가슴 찡한 감동이 옵니다.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 앞에 군중이 옷을 바닥에 펴 놓으며 예수님을 국권을 회복할 메시아로 맞이했던 벳바게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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