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05·下)] 남유다 요새도시 ‘라기스’

등록날짜 [ 2021-04-24 16:07:57 ]


<사진설명> 라기스 전경. 유다 땅을 보호하는 중요한 요새 중 하나로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면 꼭 차지해야 했던 땅이다.  



<사진설명> 라기스를 침공한 산헤립왕 군대의 이동 경로. 라기스에서 헤브론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적들의 주 침입로였기에 라기스를 방어하는 일이 무척 중요했다.



<사진설명> 라기스 전투 부조.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라기스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니느웨 궁전 벽에 부조로 새겨 놓았다. 앗수르 군이 토성을 쌓아 라기스를 공격하고 이스라엘 군이 방어탑에서 활과 투척 무기로 방어하는 모습. 그리고 라기스 함락 이후 이스라엘 병사들을 처형하는 장면 등을 볼 수 있다.



<사진설명> 히스기야 터널의 실로암 비문. 기혼샘에서 실로암까지 물을 끌어오기 위해 양쪽에서 파고 들어간 터널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새겨 놓은 히브리어 비문. “반대편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이 뚫렸을 때 동료를 얼싸안고 도끼를 서로 부딪쳤다” 등 히스기야 터널을 거의 완성했을 때 기뻐하는 장면을 글로 기록했다.



산악지대 예루살렘 침공하려면
반드시 라기스를 발판 삼아야
앗수르 산헤립왕 쳐들어왔으나
하나님 보낸 천사에 군대 전멸


B.C.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왕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먼저 라기스(Lachish)로 진군했다. 라기스는 당시 유다 땅을 보호하는 중요한 요새 중 하나로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면 꼭 차지해야 했던 땅이다. 앗수르와 이스라엘은 많은 군사를 희생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앗수르가 라기스를 차지한다.


산헤립왕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니느웨 궁전 벽에 점령 장면을 새겨 놓았는데, 현재 그 모형이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훗날 앗수르가 멸망해 라기스는 유다 땅으로 다시 편입됐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라기스를 유다 지파의 성읍이라 부른다.


윤석전 목사: 라기스의 위치와 특징을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쉐펠라 지역의 라기스가 중요한 이유는 남북과 동서를 잇는 ‘고대 도로’의 교차점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라기스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적들의 주 침입로였기에 라기스를 방어하는 일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재위 B.C. 605~562)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올 때 해변지역에서 라기스를 통해 배후도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그에 앞서 산헤립왕(재위 B.C. 705~681)도 라기스를 먼저 점령한 후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만큼 라기스는 영토 방어에 있어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실제 라기스에 가면 요새도시답게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라기스의 성을 지키던 군인이 ‘이제 아세가와 우리만 남은 것 같다’고 기록한 편지가 1935년 성문에서 발견돼 대영박물관에 남아 있고, 니느웨 산헤립 궁전에 앗수르가 라기스를 공격하는 생생한 장면을 기록한 부조가 남아 고고학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라기스는 교통의 요지이자 전쟁을 막는 요새로 유다 성읍 중 중요한 곳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는 분들이 꼭 한번 들러 봤으면 합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한 많은 유물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 쉐펠라에서 성경 속 여러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쉐펠라 지역을 이해하려면 유다 산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유다가 차지한 지역은 동쪽 유대광야, 남쪽 네게브사막, 북쪽 북이스라엘 왕국에 둘러싸여 있어 그나마 서쪽 쉐펠라 평지가 침투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쉐펠라는 400m 이하의 산악지대 중간중간에 계곡이 있고 골짜기를 중심으로 평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길이 잘 닦여 있지만, 옛날에는 골짜기가 유일한 통행로여서 골짜기 위와 아래에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쉐펠라 지역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유다 산지로 갈 수 없어 자연스레 침투로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중 라기스는 외부에서 접근하기 쉬운 가장 남쪽에 있어 산헤립왕이나 바벨론이 유다를 점령할 때 라기스에 총본부를 설치해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산헤립왕과 히스기야 터널은 어떤 연관이 있나요?


권혁승 교수: 히스기야 터널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기혼샘의 물을 성 안 실로암 못으로 끌어들이는 지하수로입니다. 히스기야왕(재위 B.C. 728~687)은 산헤립왕이 공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성 밖에 있는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터널을 뚫어 전쟁 중에도 물을 확보했습니다. 히스기야 터널은 S자 형태로 굽어 있는데,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 건설했습니다. 터널 중간 즈음에 히브리어가 새겨진 실로암 비문이 있었습니다. 이 비문은 현재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처음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 비문이기 때문에 고고학과 히브리어 연구에 귀중한 사료입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역사 속에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는 전쟁에 패했고, 하나님을 앞세울 때는 승리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가난, 질병, 정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악한 영과 영적전쟁을 합니다. 이 수많은 전쟁에서 이길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병을 고쳐라, 귀신을 쫓아내라,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전쟁도 하나님과 함께해 이기고, 육신의 건강도 영적 부유도 믿음으로 지켜서 영육 간에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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