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셀 지파 항구도시‘악고’] 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29·上)

등록날짜 [ 2022-03-28 18:29:32 ]

아셀 지파 받은 기름진 땅이지만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한 채

섞여 살면서 이방 문화 받아들여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받지 못해

바울 전도여행 악고에 들러 복귀



윤석전 목사: 아셀 지파의 성읍 ‘악고(Acco)’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로마 사람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와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더 대왕이 방문했을 정도로 세계사 속에 중요한 성읍입니다. 우리가 악고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아셀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그 땅을 할당받아 구약 시대 역사의 한 지점을 펼쳐 갔기 때문입니다. 아셀 지파의 성읍 악고로 가 보겠습니다.


‘갈멜산(Mount Carmel)’ 북쪽으로 6km를 가면 아셀 지파의 성읍 악고가 나온다. ‘돌레마이(Ptolemais)’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텔 악고(Tel Acco)’와 항구도시 ‘악고’로 구분돼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다. 항구도시 악고는 지중해 연안 천혜의 항구도시로 통한다. 악고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하루를 머물렀다가 ‘가이사랴(Caesarea)’로 떠난 곳이기도 하다(행21:7). 이곳은 구약 시대 여호수아에 의해 아셀 지파가 할당받은 성읍이었다.


<사진설명> 아셀 지파의 항구도시 악고 전경. ‘악고’는 지중해 연안 천혜의 항구도시로 통한다. 악고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하루를 머물렀다가 ‘가이사랴’로 떠난 곳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악고 주변 지도. ‘갈멜산’에서 북쪽으로 6km를 가면 아셀 지파의 성읍 악고가 나온다. ‘돌레마이’라고도 부르는 악고는 ‘두로’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이다.


<사진설명> 아셀 지파 성읍 ‘텔 악고’. 아셀 지파가 할당받은 성읍이었으나 “아셀이 악고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삿1:31) 하신 말씀처럼 이 지역에 살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채 그들과 함께 섞여 살았다.


<사진설명> 십자군 시대의 성채와 성벽. 악고는 1104년 십자군에게 정복되었고, 이후 1291년 술탄의 군대에게 패하기까지 200년 동안 십자군에 의해 통치받았다. 이때 세워진 성곽과 성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윤석전 목사: 아셀 지파의 성읍 악고는 지리적으로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은 영토 서쪽에 지중해가 있고, 해안선을 따라 해안평야지대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갈멜산 남쪽에 ‘샤론 평야(Plain of Sharon)’가 있고, 갈멜산 북쪽 지역의 평야를 악고 부근에 있다고 해서 ‘악고 평야(Plain of Acco)’라고 부릅니다. 동쪽으로 오면 중앙산악지대가 있고, 더 동쪽으로 가면 요단 지구대라는 계곡지대가 나옵니다.


악고는 ‘두로(Tyre)’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고, 갈멜산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악고에는 유적지 두 곳이 있습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항구도시 ‘악고’가 있고, 내륙으로 좀 더 들어오면 고대 성읍 ‘텔 악고’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악고에서 일어난 성경 속 사건을 소개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악고는 아셀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중심지로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문제는 아셀 지파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던 가나안 사람을 다 쫓아내지 못한 채 그들과 섞여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아셀 지파는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후 신약 시대로 내려오면 악고가 우리말 성경에서 ‘돌레마이’라고 나와 있는데(행21:7), ‘프톨레마이스’라는 말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애굽에 새운 헬라 왕국을 ‘프톨레미 왕조’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돌레마이, 프톨레마이스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때 악고에 들렀다고 하는데요.


홍순화 교수: 사도 바울이 해외로 전도여행을 나섰을 때 육로보다 해로를 이용한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악고입니다. 사도행전 21장 7절에 사도 바울이 두로를 떠나 악고(돌레마이)에 들렀다고 했는데 두로와 악고 사이의 거리가 약 40km입니다. 이튿날 또다시 배로 향한 장소가 로마 총독부가 있던 항구 가이사랴였는데, 악고에서부터 남쪽으로 55km 떨어진 곳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로로 갈 수 있는 전도여행을 당시 발달된 배를 이용해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돌레마이라고 나와 있으나, 돌레마이는 악고와 이름만 다르고 같은 지명입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은 악고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권혁승 교수: 사도행전 21장 7~8절에 너무 간략하게 기록돼 있어 많은 일은 알 수 없으나, 당시 배가 하루씩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나 봅니다. 바울이 악고(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머물 때 누군지 모르겠으나 예수를 믿는 형제들도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들을 만나 안부를 전하고 이튿날 가이사랴로 향한 것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악고는 성경 속에서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아주 유명한 곳인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악고가 성경 역사에서 중요한 곳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이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 됐는데 십자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십자군이 통치하던 기간은 200년 정도였는데, 전반부 100년은 예루살렘을 수도 삼아 십자군 왕궁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살라딘(Saladin)의 이슬람 군대에게 점점 밀리면서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후반부 100년은 악고를 수도로 정해 십자군 전쟁의 막을 내리기까지 최후의 보루로 삼았습니다. 이때 세워진 성곽과 성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고, 지금도 십자군 시대의 거대한 성채와 성벽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서 갈멜산은 인상적인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갈멜산은 어떠한 곳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갈멜산의 ‘갈멜’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케렘(כֶּרֶם, kerem)’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이 가꾸신 포도원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갈멜산은 연중 강우량이 많은 곳으로 평균 700mm 정도 내립니다. 그 정도면 중동에서 많은 양이 내리는 것입니다. 또 주변에 기름진 평야가 세 군데나 있습니다. 옛날부터 갈멜산은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산이라 하면 봉우리 하나로 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갈멜산은 길이가 24km나 되는 산맥형 산입니다. 가장 높은 곳이 550m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으면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며, 아름다운 숲과 경관이 잘 가꾸어진 하나님의 포도원 같은 산입니다.


윤석전 목사: 아셀 지파는 하나님께서 기름진 땅을 주셨고, 또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채 그들과 섞여 살면서 이방 문화를 받아들였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한 탓에 조용히 사라져 갔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쪽에 분명히 서서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도 밖에 나가면 세상 사람처럼 살다가 교회 와서도 흐지부지하면서 주님과 멀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셀 지파의 또 다른 지역인 ‘기손강(Kishon River)’과 ‘가불(Cabul)’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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