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47·下)] 하나님이 도와 승리한‘아벡’

등록날짜 [ 2023-04-13 21:46:24 ]

하나님이 도우셔서 대승 거두지만

하나님 뜻과 달리 행동한 아합왕

결국 자기의 목숨으로 대가 치러

사견 내려놓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므낫세 지파의 성읍 ‘아벡(Aphek)’에 가려면 갈릴리(Galilee) 바다를 지나야 한다. 갈릴리를 지나던 순례팀은 그 부근에 있는 한 마을에서 특별한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기도 동굴이다. 기도 동굴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아벡이라고 추정하는 ‘텔 엔 게브(Tel Ein Gev)’가 나온다. 이곳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아람 군대의 벤하닷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수적인 열세에도 이스라엘은 엘리야가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아람 군대 10만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다.


<사진설명> 아벡이라고 추정하는 ‘텔 엔 게브’ 유적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아람 군대의 벤하닷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수적인 열세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아람 군대 10만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다.


<사진설명> 갈릴리 부근에 있는 예수님 기도 동굴.


<사진설명> 아벡 주변 지도. 아벡은 갈릴리의 동쪽에 있던 성읍이며, 고고학자들마다 정확한 장소에 대해 이견이 있다. ‘엔 게브’를 아벡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며 ‘텔 소렉’이라는 곳을 아벡이라고 보기도 한다.



윤석전 목사:  다소 생소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신 장소인 아벡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아벡은 각각 다른 장소인데도 같은 이름으로 성경에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될 때 들린 안디바드리(Antipatris) 성읍의 다른 이름이 아벡이며, 오늘 소개할 아람 지역의 아벡은 또 다른 곳입니다.


이 아벡은 갈릴리의 동쪽에 있던 성읍입니다. 당시 갈릴리 동쪽의 고대 도로가 지나가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있던 성읍인 것은 확실하지만 고고학자들마다 정확한 장소에 대해 이견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 부근에 있던 성읍 몇 개 중 하나가 아벡이었다고 폭넓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추정지는 ‘텔 소렉(Tell Soreg)’이라는 곳입니다. 텔 소렉은 요새의 개념을 갖췄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이 좋아합니다. 텔 소렉을 찾아다닐 때 그 언덕이 그 언덕 같아서 주변을 헤매다가 제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한 언덕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고 찾았는데 앞에 이상한 게 보여서 봤더니 지뢰 지대여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지역이 옛날 시리아 땅이고 시리아와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뱃세다(Beth-Saida) 부근도 그렇고 아직까지 지뢰 지대가 남아 있어서 이 지역을 탐사할 때는 주의 깊게 다녀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벡에서도 구약시대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권혁승 교수: 므낫세 지파에 속해 있던 아벡에서는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아람의 벤하닷 사이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왕상20:27).


당시 아람 군대는 온 땅을 가득 메울 만큼 숫자가 많았고 이스라엘의 아합 군대는 작은 염소 두 떼에 불과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숫자적으로 적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적 열세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아람 군대 10만 명을 죽이고 벤하닷이 아벡으로 도망가는데, 그때 도망가던 아람 군대 위로 성벽이 무너져서 2만 7000명이 전멸당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왕상20:33).


이후 벤하닷이 아합왕 앞에 항복하는데 벤하닷이 “나를 살려 주기만 하면 그동안 빼앗은 성읍들을 다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아합왕은 그 말을 받아들여 벤하닷을 살려 줍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성들은 되찾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진멸시킬 상대방을 살려 준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훗날 아합왕의 목숨을 요구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옳은데 어찌 사람들이 현실을 중시하면서 내일 다가올 저주를 보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든든한 철로 삼아 달려가면 반드시 승리하리라 생각합니다. 수적 열세에도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나 넉넉히 승리한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권혁승 교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이 신앙적 원리를 믿는다면 영적 전쟁에서 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므로 승리할 수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도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면 승리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벤하닷을 손에 쥐여 줬는데도 개인적인 생각으로 죽이지 않고 살려 줌으로 말미암아 훗날 아합 왕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은 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윤석전 목사: 아람은 어떤 민족이었는지도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아람 민족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셈족 계열로 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지역의 동쪽과 북쪽, 즉 지금의 시리아 부근에 살던 민족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늘 이스라엘 옆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벳새다가 왜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는 책망을 받았는지도 알려주세요.


권혁승 교수: 성경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회개치 아니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회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회개를 ‘슈브’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메타노니아’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포함하여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께로 바꾸는 것입니다. 내 중심인 삶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벳새다 사람들은 많은 이적을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기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벳세다는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일으키고 눈먼 자를 고쳐 주신 이적의 장소입니다. 빌립은 “우리가 장정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어떤 음식도 구할 수 없다”라고 말했으나 안드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주님 손에 쥐여 주면서 주님이 일하시도록 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축복하시고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빌립은 계산하는 사람이요, 안드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의 이적은 계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안드레와 믿음의 역사를 이루는 주님이 일으켰습니다.


이런 큰 이적을 일으켰는데도 벳세다는 하나님 앞에 참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일을 일으키셨는지 주님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라신과 벳세다는 무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병 고침받고 은혜받은 체험을 하고서도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한 줄 모르며 타락하여 세상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적십니다.


아벡의 사건을 보면 적은 군대가 많은 군대를 이겼지만, 마지막에 벤하닷을 꼭 죽여야 하는데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많은 성읍을 얻었기 때문에 행복한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고 결국 자기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승리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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