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61)] 양심이 자유롭지 못할 때 죄에 매인다

등록날짜 [ 2013-06-26 09:52:39 ]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마음에 정죄함을 벗고 진정한 자유 누릴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첫 사람 아담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전 세계 인구 70억 명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다. 하나님 형상의 모양을 따라 지음받았고, 행복한 에덴동산에서 천지 만물을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 권세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단 한 가지를 금하셨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달린 실과만은 먹지 말라 말씀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창2:17).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때, 그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언제나 자유로웠다.

그러나 아담이 마귀에게 유혹 받아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고 두려움이 엄습하자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담을 찾으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렇게 잘못을 돌이켜 용서를 빌지 않고 변명하고 핑계 대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대할 수 없다. ‘회개하라’는 말은 곧 ‘네 양심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양심을 내놓지 못하고 감추고 핑계하고 변명할 때, 자유롭지 못한 양심이 죄에 얽매인다.

‘회개하라’ 곧 ‘양심에서 자유하라’
그 후 아담이 낳은 두 아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작은아들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셨으나 큰아들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시기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여 암매장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부르셨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하나님께서 다 알고 부르시는 음성에 얼른 무릎을 꿇고 양심을 내놓고 죄를 고백해야 옳았다.

하지만 가인은 변명하며 죄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이유는 죄를 물어 형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사해 주셔서 양심에 자유를 주려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심에 자유를 얻어야 한다.

자유냐, 방종이냐
세월이 흘러 아담의 후손이 번성하여 조상 아담이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알지 못하게 되자, 각자가 지닌 양심이 법이 되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양심으로 자유한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放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내 양심이 진정 자유로운지 분별해야 한다. 내가 방종할 때 주님이 재림하시면 큰일이다. 성경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했다(마24:38). 자기가 번 돈으로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자유로이 장가들고 시집가는데 그것이 무슨 죄냐며 그들은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자유를 만끽했다.

성경은 진리만이 진정한 양심의 자유를 줄 수 있기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했다. 진리로 양심의 자유를 얻은 자가 하나님 앞에 자유하고, 사람 앞에 자유하며, 자기 자신 앞에 자유를 누린다. 자유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알지 못하고, 방종이 자유인 줄 착각하다가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로 다 쓸어버림을 당했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유황불로 심판받았다.

양심의 자유는 오직 예수 피 공로로
모세 시대까지는 자신이 지닌 양심을 기준으로 삼고 살았다. 그러다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을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대로 산 행동이 죄인 줄 깨달았다. 율법을 보니 이전까지 애굽에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 하였던 행위가 죄요,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행동이 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율법을 받은 후로는 자기 양심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법이 기준임을 알게 되고, 율법 앞에서 양심이 정죄를 받았다.

율법 앞에 정죄받은 양심, 죄에 묶여 꼼짝할 수 없게 된 양심을 해방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능력 외에는 없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능력으로만 양심이 자유로울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소를 잡고 비둘기를 잡고 수양을 잡는 제사를 드려도 양심이 자유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짐승이 흘린 피로는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는 길, 곧 양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예수의 피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율법으로 양심이 정죄받아 꼼짝 못하는 우리를 살리려고 보혈을 흘려서 율법에서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의 성령의 법은 곧 은혜의 법, 해방의 법, 속죄의 법이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한마디로 죄에서 자유, 양심에서 자유를 얻게 한다. 양심이 자유로운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는가? 양심의 자유가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이 양심의 자유를 얻은 진정한 자유자다. <계속>

*윤석전 목사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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