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74)] 예수 이름을 우리에게 주기까지

등록날짜 [ 2013-10-08 11:04:03 ]

에덴에서 쫓겨난 후 수천 년에 걸쳐 완성한 이름
가장 완벽하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루신 사역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령의 역사를 한마디로 일컫는 이름이 ‘예수’다. 우리는 “예수여!” 하고 쉽게 부르지만 그 이름을 완성하기까지는 성경적으로 수천 년 역사가 흘렀고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최초의 사람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어 인류에게 멸망이 찾아왔고, 인간의 죄악이 더욱 관영하자 하나님께서 홍수로 노아의 식구 외에 모든 인류를 멸하셨다. 이후 노아의 후손이 세계 각 곳에 흩어져 민족을 이뤘으며, 근동지역에서 하나님께 택정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민족을 이룰 만큼 창대해지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보내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선지자를 보내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으며, 제사장들을 보내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할 때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이 친히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한 이름이 바로 ‘예수’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이룬 이름, 인간을 축복하고 은혜를 베풀 이름, 불가능을 해결할 전능한 ‘예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사용하여 그 이름의 진가를 마음껏 누리며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

아들의 생애로 이룬 예수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은 우리를 구원한 이름이 아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피 흘릴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율법을 주신 이름으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우리를 속죄(贖罪)한 이름이다. 만약 예수가 육신을 입지 않았다면, 예수 이름은 완성될 수 없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고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단지 설계도를 가졌다고 해서 집을 완성한 것이 아님은 말할 나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를 구원할 뜻이 있다고 해서 인류 구원이 성취된 것은 아니다. 아직 예수라는 이름이 완성되지 않았다. 아들의 생애가 있어야 인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고, 예수 이름이 완성된다. 그러기에 인류 구원의 뜻만 가진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우리를 속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실 때, 우리 인간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은 인자로 이 땅에 와서 피 흘려 죽으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완성하셨기에 우리는 그 이름으로 거듭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됐다.

예수는 자신이 인자로서 이 땅에 온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했다(요6:38~4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라”(요6:40)고 하셨다. 그 뜻을 인자로 확실하게 이룬 분이 예수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예수께서 기도하시기를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들을 보전하였사오나 나는 이제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들을 보전하옵소서”(요17:11)라고 하였다. 이 기도의 응답으로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을 보내 신부로 만드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도 성령 받아 신부가 되지 않으면 그분이 내 안에 계실 수 없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신부로 만들었다. 그분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분 안에 있어서 성령이 충만할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절정은 주님을 사랑할 때다.

피 흘리기 위해 인자로 오신 예수
예수께서는 이처럼 자기 육체가 고난 받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 이름을 완성하는 일에 사용될 때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표현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누가복음 18장 31~33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죽을 목숨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할 때는 언제든지 죽음을 앞에 두거나, 희생을 앞에 두거나, 고통을 앞에 뒀을 때다. 인자라는 말은 고통 받을 육체가 있다는 말이다.

예수는 참하나님이요(요일5:20) 참사람이시다(딤전2:5). 참하나님이어야 죄가 없기에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실 수 있고, 참사람이어야 피 흘릴 육체를 입고 와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참사람, 곧 인자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해결하여 예수 이름을 완성한 다음에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라는 이름을 완성하여 우리에게 주시려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작업을 진행하셨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예수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실 때 가장 완벽하게, 가장 자유하게 사용할 수 있게, 무엇이든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게 가장 확실하게, 가장 효과적인 최고의 상태로 우리에게 주셨다. 그 전능하신 예수 이름을 인자로 완전히 이루셨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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