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109)] 예수를 만나면 현재성 넘치는 이적을 만나

등록날짜 [ 2014-07-15 22:18:38 ]

예수께서는 30세가 되자 인류 구원 사역을 이루시려고 성령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공생애 동안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이 겪는 불행을 현장에서 즉시 해결해 주셨다. 누구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현장에서 전지전능하신 이적을 제한 없이 나타내셨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이적을 보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야로 여겨 예수를 좇았다. 그러나 장로, 서기관, 제사장, 랍비 등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예수를 배척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마9:1~8)고 말씀하시자 ‘죄를 사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어찌 감히 나사렛 목수의 아들 주제에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하는가, 참람하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이 볼 때,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쯤으로 여길 뿐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호적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었다. 요셉의 아들이 분명하다는 법적 증거가 있으니 자기 입으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예수를 신성모독 죄인으로 보기에 충분했기에 죗값에 상응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됐다.

예수는 죽을 권세와 살 권세가 있는 분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시다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유다가 자기를 팔 자인 줄 뻔히 알고도 데리고 다니신 것이다(요6:70~71). 예수께서는 이처럼 자기 제자에게 팔려 죽으셔서 인류의 죗값을 갚고 부활하러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10:17~1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인류의 죗값을 갚으시려고 십자가라는 중대사를 행하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셨다(히5:7). 그리고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가셔서 가야바의 뜰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매 맞으시고 능욕을 받으시며 처절하게 수난을 받으신 후, 최후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잔인하게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인류의 모든 죄와 허물과 질병과 사망과 영원히 불타는 지옥 고통을 해결하셨다.

 

예수는 복음이며 진리이시다


예수께서는 죽은 지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열한 번이나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평소 제자들에게 죽은 후 부활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확인해 보이신 것이다(마16:21).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다. ‘증인’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예수를 보고, 듣고, 만난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를 통해,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나타내신 전능하신 이적을 예수 이름으로 나타내 보여 주면서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예수가 한다’라며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는 증인이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여 성령의 권능을 받자 유대 백성을 향하여 외쳤다. “너희는 예수를 죄 있다 죽였으나 그는 죄가 없으시기에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바로 너희의 죽을 죄를 담당하시고 너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한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너희의 죄를 내놓고 회개하라. 그러면 살리라.”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누구나 죄 아래 있으므로 죽으면 죗값으로 지옥 형벌에 처해진다.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고, 오직 예수로만 간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진리요, 생명의 복음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복음은 복된 소식, 즐거운 소식, 기쁜 소식, 행복한 소식, 아름다운 소식을 말한다.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왔으나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뒤에는 애굽 왕 바로와 장관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붙들어서 노예로 부리려고 추격해 왔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복된 소식이 들려왔다.

“모세야, 네가 가진 지팡이를 바다를 향해 내밀어라”(출14:15~16).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이다. 복음인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를 바다에 내밀자 곧 복음의 진리가 왔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바다를 가르고 양쪽으로 물 벽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갈라진 홍해를 육지같이 걸어서 건너갔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 곧 복음을 들어야 한다. 예수는 곧 진리요, 생명이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전능하신 복음이다.

 

예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가복음 8장 41절 이하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께 찾아와 병들어 죽어가는 자기의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다. 예수께서 간절한 요청대로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중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주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아이의 죽음을 애통해할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5:39).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분명히 확인했는데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므로 예수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해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실 때 소녀가 곧 일어났다. 이것이 복음이다. 야이로와 딸에게 복음이 왔던 것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로 죄와 저주와 질병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받은 복음을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다. 또 자신의 불가능을 예수로 해결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복음을 만났다고 한다면, 그도 역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전능하신 예수의 사역으로 복음을 만난 사람은 아니다. 그는 그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종교인일 뿐이다.

일반 종교는 도덕적인 사람, 윤리적인 사람, 선덕을 베푸는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복음이 있을까? 우리는 복음 없는 종교인이 되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독교는 인간이 도무지 해결할 길 없는 영육 간의 불가능한 일을 예수로 해결하려고 믿는다.

기독교에 속죄와 불가능을 해결하는 능력이 없으면 이 또한 종교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의 불가능을 해결하실, 진리이신 예수라는 복음을 만나려고 신앙생활 한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는 수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 영육 간에 절대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여든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9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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