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30>] 파괴된 창조의 재창조

등록날짜 [ 2011-09-07 10:59:56 ]

이 견해에 따르면, 어린 지구 창조론(Young earth view)과 오랜 지구 이론(Day-age view), 두 견해 모두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두 견해 모두 창세기 처음 두 장을 지구의 원시적 창조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창세기 1장 재창조 견해 지지자들은 이 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맨 처음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 이후 성경 두 장은 하나님의 재창조이지 맨 처음 창조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에 나타난 맨 처음 창조는 사탄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부패했고, 심판을 받았다. 처음 창조는 ‘혼돈하고 공허(formless and void)’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회복하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구에 그의 주권을 행사할 인간과 함께 다시금 세상을 번성하게 하시는지를 창세기 1장과 2장에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어느 정도 ‘기간(gap)’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를 기간 이론(Gap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 이론은 어린지구이론이나 오랜지구이론을 넘어서는 수많은 장점을 제공한다.

첫째, 창세기 1장 2절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에 대한 묘사는 히브리 단어 의미로는 경멸적인 묘사다. 성경에서는 ‘혼돈한(formless, 히브리어 tohu)’과 ‘공허한(void, 히브리어 bohu)’을 의미하는 단어는 주로 타락하고, 낭비하여 버려지고, 심판을 받은 것들에 대한 결과적 표현에 사용했다(단32:10;사24:10;49:4). 심지어 이 단어들을 함께 사용한 두 구절들도 명확하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절망적인 상태의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사34:11;렘4:23).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나는 묘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상태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첫 구절과는 반대로 창세기 1장 둘째 구절은 하나님의 원시적 계획의 묘사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주가 세상을 헛되이(히브리어 tohu) 창조하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이사야서 45장 18절의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이것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세상의 창조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어떤 구약 학자들은 창세기 1장 2절 ‘있고(was)’라는 동사를 ‘되었다(became)’이라는 동사로 번역할 수 있고 그렇게 번역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이 처음에는 세상을 ‘혼돈하고 공허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으나 나중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혼돈과 공허’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인 것이다.

둘째, 많은 구약 학자는 ‘깊음’이라는 히브리 단어 또한 종종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것들을 의미하거나, 이방신들에 관계한 것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 때문에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을 ‘그 깊음 위에 있고 수면에 운행한다’고 묘사했을 것이다. 고대 히브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신이 사단의 세력을 궁지에 빠뜨린 것을 나타낸 것이다. ‘깊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죄악의 성질은 창세기 1장 2절에 언급한 상태가 하나님이 맨 처음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 창세기 1장과 2장 외에도 창조를 언급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간과하지만 사실 성경에는 많은 창조 구절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구절들 상당수는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자 치룬 많은 적(예:물들, 용, 악어)과 하나님의 전쟁을 묘사한다(시74:12~17;89:8~18;104:1~9). 고대 근동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의 전쟁이 세상 창조 전에 있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성경 구절들은 이러한 관점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고대 근동 사람들이 믿은 이방신들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가 적들을 물리친 승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넷째, 동물들과 사람들을 제외하고(창1:21, 26~27) 창세기 1장은 ‘창조하다(create, 히 bara)’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만들다(make, 히asah)’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드신다. 이러한 관찰은 창세기 1장과 2장이 맨 처음 무에서 창조가 아니라 세상 재창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견해와 잘 맞아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견해에 따르지 않는다면 창세기 이야기는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면을 야기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정복하라’는 명령은 인류가 어떠한 저항을 만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히브리 단어 kadash(정복, dominion)은 보통 압제, 정복, 적을 지배하는 의미를 지닌다(민32:22;29;수18:1;느5:5;렘34:16;미7:19;슥9:15). 같은 선상에서 아담에게 동산을 ‘지키라(keep, 히 shamar)’고 하신(창2:15) 단어 의미는 어떤 적에게서 ‘지킨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동산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지키도록’ 그룹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창3:24).

만약 창세기 1장 이야기가 하나님의 맨 처음 창조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지어졌다면 아담과 하와는 무엇을 ‘정복하고’ 무엇에게서 ‘지켜야’만 했겠는가?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창세기 처음 두 장이 이전의 파멸에서 세상 재창조를 묘사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정복’과 ‘지킴’에 관한 명령은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 중 하나는 처음 이전의 파괴를 이끌던 사단의 구속에 빠지지 않도록 지구를 지키는 일인 것 같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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