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41>] 문자적인 천년왕국은 오지 않는다고 주장

등록날짜 [ 2012-02-21 09:52:14 ]

주님 재림 때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후천년주의 주장과
두 부활과 두 심판이 나뉜다는 전천년주의 주장 모두 거부

현대 후(後)천년주의자는 전(前)천년주의자의 주장에 반대하며 요한계시록 많은 구절에서 말하는 천 년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인다. 또 모든 후(後)천년주의자는 천 년에 의해 구분되는 두 가지 부활과 두 가지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전(前)천년주의자 견해를 반대한다.

신약에서 언급하는 마지막 때 일들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천년주의자는 문자적 천 년 기간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무(無)천년주의자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시록에서 언급한 천년왕국은 사단이 옥에 갇히고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그의 교회를 통해 다스릴 미래 어떤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이런 기간의 마지막에 신약에서 언급한 마지막 때의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後)천년주의자에게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문제점(1)-후(後)천년주의 견해는 천 년 기간이 도달할 때까지 마귀와 싸우고 왕국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교회가 일관성 있게 주도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前)천년주의자가 항상 주장한 것처럼 성경은 낙관적인 결과를 지지하지 않는다. 성경 많은 구절이 마지막 때가 이를수록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마24:3).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는 처음에 경고로써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수가 많아질 것이라고 대답하셨다(4~5,11절). 또 전쟁(6~7절)과 기근과 지진(7~8절)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후 그의 제자들이 환난에 넘겨지게 될 것이고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9절). 대대적인 배교가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할 것이라 하셨다(10절). 이뿐 아니라 믿지 않는 많은 사람이 사랑이 식고 불법이 성해지고 잔인하게 악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2절).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이런 일들을 참아내야만 할 것이다(13절). 이런 사실들은 교회가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법을 적용하고자 일한다는 긍정적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바울과 베드로도 이 세계의 미래에 대해 이 같은 부정적 표현을 사용했다. 바울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살후3:2~5).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말했다. 마지막 날에는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3:3~4).
 
요점은, 신약이 주는 희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이 점차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약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게서 점차 멀어진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말한다.

▶문제점(2)-후천년주의자는 맨 처음 제자들이 주님께서 금방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그들이 주님의 재림 이전에 일어날 천년왕국을 기대했다는 견해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이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리는”(살전1:9~10)지를 주목했다.

또 그의 제자 디도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도록”(딛2:12~13) 가르칠 것을 지도했다.

처음 기독교인은 평화의 천 년 기간을 기다리지도, 심지어 그때를 위해 사역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썩어져가는 세상 속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길 기다리고 있었다(히9:28;약5:7;벧전1:13;벧후3:11~12).

▶문제점(3)-교회가 세상 어떤 부분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할지라도 후(後)천년주의자가 주장하듯이 교회가 세상을 계속해서 점령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주님이 이 땅의 주권을 되찾으신다면 주님의 재림만큼이나 급진적이며 초자연적 역사가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무천년주의자는 후천년주의자에 반대하는 전천년주의자의 주장(주님께서는 언젠가 재림하실 것이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세상이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무천년주의자는 전천년주의자에 반대하는 후천년주의자의 주장(천 년 기간을 통해 두 부활과 두 심판이 나뉘고, 요한계시록 20장과 종말론에 관한 나머지 신약 구절을 조화롭게 하는 일이 불필요하며 복잡하게 뒤엉킨 노력일 뿐이다)에는 동의한다. <끝>

위 글은 교회신문 <2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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