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6-07-18 14:08:28 ]
다윗은 아들의 반역, 사람의 조롱에도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라며 주 찬양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도 내 죄 대신해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구원을 이루셔
맨발이었다. 머리를 가렸다. 한 나라의 왕이, 그렇게 산을 올랐다. 어제까지 왕이었다. 오늘은 도망자였다. 신발 신을 겨를도 없이 달려서 발바닥에 돌이 박혔다.
머리에는 천을 둘렀다. 왕관을 쓰던 그 자리. 그 얼굴이 부끄러워 스스로 가렸다.
한때 이 왕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춤을 췄다. 체면도 잊고, 머리를 높이 들고, 온 성이 보는 앞에서 뛰놀던 왕이었다. 높이 들려 있던 그 머리가 지금 천 아래 숨었다. 이 길은 남이 만든 길만은 아니었다.
아들이 칼을 들었다. 압살롬. 다윗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노렸다. 칼을 든 것은 아들만이 아니었다. 다윗은 자신의 적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왕이 된 이후 누구도 그 앞을 막지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온 나라가 등을 돌렸다. 어제의 충신들이 돌아서고, 함께 떡을 떼던 자들이 반역의 편에 섰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비웠다. 도성을 등지고 감람산을 오르며 한 걸음마다 울었다. 머리를 들 수 없었다(삼하15:30). 칼만 무서운 게 아니었다. 더 깊이 찌르는 것은 말이었다. 길가에서 사울왕의 친족이던 시므이가 따라붙어, 돌을 던지고 흙을 끼얹으면서 저주를 쏟았다. “피를 흘린 자여 가거라”(삼하16:7). 저주는 한 입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입이 같은 말을 뱉었다.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시3:2). 이 말이 칼보다 아팠다. 칼은 몸을 벤다. 그 말은 영혼을 벴다.
무엇이 가장 아팠을까. 배신이 아니었다. “너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그 말이었다. 무엇을 잃어도 버티는 사람이 있지만, 버림받았다는 말, 그 한마디에 무릎이 풀린다.
어떤 밤은, 죽음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 차라리 벌을 내리시면 견딘다. 아무 말도 없는 것이 무섭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그것은 그저 불운이다. 그러나 그분을 아는 자에게는, 그 침묵이 가장 깊은 어둠이다. 하나님이 등을 돌리셨다면 더는 부를 이름이 없고, 기댈 벽도 없고, 두드릴 문도 없다.
셀라. 멈추라는 표시이다. 이 저주 앞에서. 누구에게나 그런 밤이 있다. 다 잃은 것은 오히려 견딘다. 무너지는 것은 한 문장 앞에서이다. “너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겠느냐.” “네가 믿던 그분이 너를 버린 거다.” 그 말이 영혼을 긁고 지나가는 밤. 등을 돌리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밤. 아침이 와도 반갑지 않은 밤. 그 밤을 다윗도 지났다. 맨발로, 머리를 떨군 채.
그 저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천 년이 흘렀다. 골고다까지 흘렀다. 그 언덕에 한 사람이 달렸다. 그 발 아래서, 다윗이 듣던 그 말이 다시 울렸다.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건지실지 보자”(마27:43). 같은 조롱. 같은 저주. 천 년의 거리를 두고, 같은 문장이 두 머리를 쫓았다. 다윗에게는 거짓 조롱이었다. 그리스도께는 심판이었다.
버림받아야 할 죄인은 나였다. 그 자리에 그가 섰다. 못 박힌 손. 찢긴 등. 가시에 눌린 머리. 피가 흘렀다. 그 말이 마침내 떨어진 곳은 다윗의 머리가 아니었다. 골고다였다. 무죄한 이의 머리 위였다. 그날 다윗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 저주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골고다에서, 누군가 대신 받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9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