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이야기 243] 하나님께 영광 드린 요셉

등록날짜 [ 2021-08-12 23:46:01 ]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창41:14). 요셉은 애굽의 술객들과 박사들도 해석하지 못한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감옥에서 나와 바로 앞에 섰다. 감옥에서 관원장들에게 꿈을 해석해 준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바로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창41:15)며 요셉을 인정하고 높여 주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라고 말했다.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임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 것이다.


죄수에 불과하던 요셉은 애굽의 뛰어난 박사들과 술객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능히 할 수 있다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바로 앞에 섰다. 비천한 죄수 신분이었는데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요셉이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성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지혜와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교회 일이나 영적인 일보다 세상 일을 우선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기보다 세상 지식을 배우는 데 모든 열정을 소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다.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성령 충만하기까지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최우선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가득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바로의 꿈에서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치우는 모습이 나온다. 파리하고 흉악한 소가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나 먹은 듯하지 않고 여전히 흉악하였다(창41:18~21). 


애굽에 7년간 풍년과 7년간 흉년이 있을 것이라는 몽조(夢兆)에 불과하지만, 바로의 꿈에 나온 흉악한 소의 모습에서 우리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탐욕’은 흉악하고 파리한 소처럼 만족할 줄 모르고 재물을 얻으면 명예를 탐하고, 명예를 얻으면 권력을 탐한다. 탐욕은 결코 사람에게 참된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탐욕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무엇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탐욕은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다. 성도는 세상적인 탐욕을 버리고 영혼의 때를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1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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