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6-03-10 09:47:17 ]
북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범죄한 탓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곳, 피난 갔던 곳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한 후 포로 귀환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보수했습니다. 바로 그 회복의 때를 염두에 두고 있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는 회복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호세아서 11장 8절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라고 기록합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신명기 29장 23절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한으로 훼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말할 것이요”(신29:23). 즉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함께 망한 성읍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이스라엘을 망하게 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갈등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징계하고 심판의 경고를 주어도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신다는 말입니다. 당장이라도 이스라엘을 멸망시켜 깨끗이 끝내 버리고 싶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 진노를 이긴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하나님의 사랑이 덮어 버린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라는 긍휼이 생기다 보니 살리겠다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후회하거나 갈등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무능력하기에 후회와 갈등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을 향해서는 갈등하고 고민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십니다. 바로 사랑과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는 당장 멸해야 하지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보다 긍휼하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죄악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로 그냥 멸망시키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 멸망하는 인간을 향해 긍휼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아들을 죽여서라도 살려 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위 글은 교회신문 <9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