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52] 빚을 진 자의 책임

등록날짜 [ 2019-07-12 14:20:40 ]

양심이 있는 사람은 빚을 졌을 때 갚으려고 노력한다. 빚은 갚아야만 하는 책임(obligation)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돌로 치는 데 찬성한 자였고,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난 장본인이었다.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앞에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을 때, 바울의 죄는 모두 씻겼으나 그의 양심에 복음의 빚은 남았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빚진 자는 헬라어로 ὀφειλέτης(오페이레테스; debtor), 즉 채무자(債務者)다. 이 말의 어원인 ὀφήλω(오펠로) 자체가 ‘~에 대하여 의무를 지다’(obliged to)라는 명확한 책임성을 띠고 있다. 실 한 오라기만큼 빚을 지면 분명히 그만큼 의무가 생긴다. 채무감이 애매모호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빚졌는지 모르거나, 빚을 갚기보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크게 보이거나, 하나님의 법과 선한 양심을 따를 때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아서다.


빚이 복음이든, 사랑이든, 물질이든 그에 따르는 ‘의무’의 본질은 같다.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나님의 것이나 사람의 것이나 갚으려 하지 않고 달라고만 한다면 정욕이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9)라고 하신 주님께서 돈을 주인 삼은 자에게 재물을 부어 주실까.


우리가 지옥 갈 신세에서 생명 얻은 일이야말로 가장 큰 빚이다. 주님은 이를 구체적으로 빚진 돈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비유로 설명해 주셨다(마18). 그 빚이 무엇인지 안다면 내가 판단할 죄가 없고 감사치 못할 순간이 없다. 세상임금은 돈을 최고의 가치라고 세상을 미혹하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동전 한 닢 준 적 없는 거부(巨富)를 숭배한다. 하지만 실제 거부들은 가진 것에 비해 인색하고, 진실로 나누는 자들은 자신에게 검소하다. “저 사람은 풍족하니 이까짓 것쯤 베풀어도 별것 아니야”라고 사람들은 오해한다. 만일 베풀지 않고 자기에게 썼다면 훨씬 호사를 누렸겠지만, 사람들의 양심이 그런 것은 흘려 버린다. 대부분 아홉 문둥병자처럼 어물쩍 넘어간다(눅17:17). 그 때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는’(행20:35) 인생, 혹은 재물을 옮길 만큼의 복까지 못 간다.


하지만 훈련돼 점점 더 많은 부를 옮기는, 배달부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빚지게 하는 것(잠19:17)이며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신다는 것을.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과 어물쩍 넘어가는 것 사이의 간격은 그렇게 한없이 벌어지게 돼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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