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67]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

등록날짜 [ 2020-02-25 07:20:45 ]

결혼적령기에 교제하는 남녀가 있다.


“오빠가 너를 사랑하는 거 알지? 그렇지만 우리가 책임져야 할 각자의 짐은 각자가 짊어지자. 결혼은 하지 말고, 아이도 가지지 말자. 부모도 각자 알아서 맡기로 하자. 서로 얽히면 힘들어져. 우리는 그냥 이대로 쿨하게 계속 데이트만 즐기는 거야.”


남자가 이런 입장을 내세운다면 그 사랑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만 하겠다는 심보는 근본적으로 회개한 양심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37~39)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라는 말씀에서 ‘은혜’와 ‘진리’는 히브리어 성경에 ‘헤세드’와 ‘에메트’로 표현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 바쳐 그 언약을 지켜 내신 하나님의 양심이며 충성되고 신실하신 사랑 그 자체인 분이시다.


신약 성경 원문인 헬라어에도 ‘은혜, χάριτος(카리토스; grace)’와 ‘진리, ἀλήθεια(아레이테이아; truth)’는 히브리어 중의(重義) 용법을 그대로 썼다. 특히, ‘진리’는 헬라어 사전과 성경적 의미에 더해서 풀어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언약을 지켜 목적을 달성하신 것을 본받는 사람의 의무(duty)나 의리(loyalty)”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에메트’에 해당한다.


우리는 흔히 ‘은혜’가 우리의 행함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왜곡해서 “나는 구원받았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행함없음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사도행전에 스데반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유대인 무리가 던진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을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행6:8)라고 기록했다. 스데반이 붙들린 양심은 그리스도의 ‘인애와 충성’, 이를 합한 단어 ‘은혜(헤세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우리의 배신과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위 글은 교회신문 <6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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