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73] 판단 그리고 심판과 분별

등록날짜 [ 2020-05-16 11:01:52 ]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리를 내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런 악기는 자연스러운 연주 자세를 갖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전공자 중에서도 처음에 기본기를 잘못 익혔거나 나쁜 습관이 들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은 TV에서 배우가 바이올린을 켜는 연기를 보면, 매우 부자연스러움이 ‘저절로 한눈에 확’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진짜 연주자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른다. 이뿐 아니라 화가도 기본기인 데생을 오랫동안 훈련했기에 일반인에겐 다 거기서 거기 같은 추상화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낙서에 불과한지 그 경계를 한눈에 파악한다. 전문 영역이 있는 모든 부문의 가치판단은 이와 같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 개역한글 성경에서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번역이 ‘판단’이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위의 두 경우를 모두 ‘판단’이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분명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 


‘판단’으로 번역된 첫 번째 경우는 헬라어 κρίνω(크리노)다. 영어로 ‘judge’ ‘criticize’에 해당하는데 ‘심판하다, 비판하다, 정죄하다’를 뜻한다. 인간은 모두 죄인인데 누구에게 이렇게 ‘심판’할 권력과 자격이 있을까. 예수님조차 누구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남을 판단하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 잘못을 저지른 자요, 하나님을 월권하는 자”라고 여러 차례 말한다. 여기서 ‘판단’, 곧 κρίνω(크리노)는 ‘심판’ ‘비난’의 의미다.


두 번째 ‘판단’은 헬라어로 ἀνακρίνω(아나크리노)다. 영어로 ‘evaluate’, ‘investigate’에 해당하며, ‘평가하다, 사실을 탐문하다’란 뜻이다. 이는 정죄 문제를 내가 저울질하는 것과는 다른, 객관적 가치의 문제를 다룸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두 번째 ‘판단’의 번역은 ‘분별‘이라는 의미로 보는 편이 오해가 적을 듯하다. 즉 기도와 말씀과 순종과 성령 충만으로 경건의 연습에 이른 이들은 모든 것을 ‘분별’한다. 고린도전서 12장 5절의 신령한 자들의 ‘판단’도  바로 ἀνακρίνω(아나크리노)로 쓰였다. 신령하지 않은 이들은 신령한 이들을 교회 안에서조차 육신의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알아보지 못하기 일쑤다. 마치 전문가가 엉터리 바이올리니스트가 악기를 잡는 순간에 왕초보임을 알아보듯, 신령한 이들은 몇 분만 대화를 나눠도 ‘분별’할 능력이 배어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를 결코 비판하지 않는다(롬14:1). 이를 똑같이 ‘판단’이라고 번역했지만 심판, 비판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면 성경을 모순되게 하는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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