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예수’라는 이름을 주신 의미

등록날짜 [ 2016-02-15 13:50:30 ]

영원 전부터 계시는 이의 능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여호와는 하나님의 명칭으로서 히브리어 자음 네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래 발음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자음 네 개를 영어로 음역하면 ‘YHWH’이다.

히브리어는 22개 자음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음이 없어서 모음 부호 없이는 읽기 어렵고, 발음은 구전으로 전해져 왔다. 발음 표기를 하려고 자음 주위에 선과 점 등 모음 부호를 붙인 것은 훨씬 후대 일이었다.

유대인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20:7)는 십계명 중 제3계명을 너무 철저하게 지키려고 한 나머지 기원전 300년경부터 이것을 전혀 발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를 의미하는 아도나이로 읽었다. 이런 영향으로 후대에는 히브리어 네 자음으로 표기한 하나님 이름의 원래 발음을 잃게 되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어 발음은 구전으로만 내려왔기에 발음하지 않으면 원래 명칭을 알기 어렵다.

여호와예호와’(YHWH)라는 히브리어 자음에 를 뜻하는 아도나이라는 모음이 결합하여 생겨났다.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른 하나님의 명칭과 동일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하나님의 명칭을 여호와대신 야훼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히브리어 네 자음 문자(YHWH)’()로 번역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에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를 뜻하는 퀴리오스로 표기돼 있다. 이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예외 없이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칭에는 이외에도 ’, ‘엘로힘’, ‘엘룐등이 있는데 우리나라 성경에는 거의가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하나님 이름을 어떨 때는 주님으로 쓰고, 어떨 때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딱히 구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칭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라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남성적 존재로 그려졌고 그리스도로서 구속 사역을 담당하려면 남성이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데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아 임명한 직책은 , 제사장, 선지자였다. 선지자의 경우에는 간혹 여자가 있었지만 왕은 거의, 제사장은 반드시 남자라야만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이 여자로 태어나셨다면 그리스도의 삼중직 수행에 많은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구약성경에서 이미 남자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였다. 하나님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메시아를 보내주겠다는 예언을 하셨는데 이 예언에 등장하는 메시아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적인 존재로 그려졌다. 대표적인 말씀이 이사야 96절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이 말씀에 의하면 메시아가 남자로 오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예언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아들, 기묘자, 모사, 아버지, 왕은 모두 남성적 의미가 담긴 명칭이다

하나님 어머니가 없는 이유

인간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없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고 아이가 자라날 때는 어머니의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 사회의 아버지-어머니-자녀 관계로 보는 것은 무리한 사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인간의 부자 관계와 다르다. 성자는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스스로 계신 분이다. 성부보다 뒤에 나신 분이 아니다. 또 성부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등하신 분이다. 이 같은 성자의 지위는 인간 사회의 부자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남성적 의미보다는 부모의 개념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머니로서 역할도 모두 담당하시기에 굳이 하나님 어머니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 어머니라는 개념을 쓰는 종파가 있다면 이는 여성 교주를 신격화하려는 수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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