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5-13 14:09:21 ]
암 진단 5년 만에 완치 판정받아
주님 은혜와 성도들 기도 덕분에
죽음의 고통도 견뎌 낼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한 인생 되찾아준
주께 감사해 평생 복음 전할 것
지난 2020년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경험한,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해였다. 그 당시 어지러움과 두통이 계속 이어져 여러 차례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며 원인을 찾았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통증이 점점 심해져 더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고, 결국 ‘뇌혈액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담당의에게서 “살 수 있는 날이 두 주 정도 남았다”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통함 앞에서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으리라는 소망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담대해질 수 있었다.
고통스럽던 그 시간에 담임목사님과 연세가족이 나와 함께해 주었다. 담임목사님께서 투병 소식을 들으시고 “이순옥 교구장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며 모든 연세가족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셔서 많은 이가 내 문제처럼 마음 쏟아 애절하게 기도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식구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뇌 병증과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고통을 잘 견뎌 낼 수 있었다. 항암에 사용하는 약이 너무 독하여 무척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걱정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항암치료에 잇따르는 부작용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고, 사지에 힘이 없고, 혀가 굳어 버려서 말을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천국에 가 버렸으면….’
고통 없고 괴롬 없는 천국을 소망하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지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였다. 깨어 있는 동안 어떻게든 기도하려고 했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죄를 찾아 회개하여서 하나님과 불목한 부분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육신의 고통이 워낙 심하다 보니 ‘담임목사님도 육신이 연약하실 때 이렇게 괴로워하셨겠구나’ 조금이나마 가늠하며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함께 충성하던 교구 직분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어느 때보다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오랜 세월 교구 직분자로 충성해 왔기에, 영혼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느라 늘 긴장한 채 마음을 들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여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연세가족들이 진실하게 중보기도 해 주고 섬겨 주어 흑암 속 고통의 터널에도 세밀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암치료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하여 보행 보조기를 의지해 걷기 시작했고, 점차 다리에 힘이 생기며 한 발씩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여전히 눈앞이 희미한 것과 어눌한 말투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나, 두 주밖에 살지 못한다던 의사가 겸연쩍어 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결국 반년에 걸쳐 6차에 걸친 지독한 항암치료를 마치니 뇌에 있던 암세포가 싹 사라졌다. 2020년 초에 암 진단을 받은 후 반년 동안의 치료, 그리고 또 6개월 후인 2020년 12월 추적관찰 검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해 여름에 받은 검사에서도 역시 암세포가 전혀 발견되지 않자 나를 기가 막힌 고통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렸다. 할렐루야!
주님 은혜 감사하여 내 평생 복음 전도
건강 탓에 영혼 섬기는 사역을 이어 가지 못했으나, 그사이 가족들과 함께 귀한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딸들과 더 돈독해지는 기쁨을 경험했다. 큰딸이 열한 살이던 해에 지역장 임명을 받은 후 십수 년간 교구 식구들을 섬기는 데 마음 쏟으며 살았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을 법하나 불평 한마디 없이 올곧게 자란 두 딸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그러한 속내를 전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만 미안해했다. 남편도 주의 일을 하는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남편만큼 내 배우자를 살뜰하게 챙겨 주지 못했다. 주의 일에 전념하다 보니 늘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고 아이들에게도 자상한 모습보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엄한 모습을 더 많이 보인 지난날이 가슴 쓰리도록 아팠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것은, 엄마의 부재를 주님께서 다 채워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딸들의 헛헛함을 채워 주셨고 가족들에게 필요한 부분도 세심하게 메워 주셨다. 다 큰 딸들은 “이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라며 오히려 나를 격려해 준다. 주님의 은혜 덕분에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성숙해진 딸들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현재 딸들은 각각 대학청년회에서 문화사역으로 복음을 전하고, 부장으로서 맡은 영혼을 섬기고 있다. 지난날 영혼 섬김에 매진한 엄마의 모습이 거울이 된 듯 딸들 또한 주의 일에 마음 쏟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하다.
3년 전부터 93세인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형제자매 중 예수 믿는 자식은 내가 유일했기에 어머니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남은 여생을 은혜롭게 채워 주며 참효도를 하고 싶었다. 비록 노모를 섬기기에는 내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성령님께서 생각과 마음에 힘을 주셔서 어머니의 영혼을 주님 심정으로 섬길 수 있었다. 음식을 씹기 어려운 어머니를 위해 따로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거동이 불편하여 늘 동행해야 했으나,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어머니가 은혜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단함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지난 2023년 겨울, 그토록 사모하던 천국으로 너무나도 곱게, 자는 듯한 모습으로 평안하게 떠나셨다. 친정어머니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뜨겁게 만나고 성령 충만한 때 기쁨으로 천국 가시도록 주님이 나를 사용해 주셔서 감격스러웠다.
암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되는 올해 2월에는 대학병원을 찾아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담당의사는 “암환자가 5년 동안 재발이 없으면 완치로 본다”라며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순간 “할렐루야! 주님이 하셨습니다”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지난 5년간 고통스럽던 일을 그리고 그 괴로움만큼 경험한 주님의 은혜와 가족들의 사랑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가 흘러나왔다.
이번 총력전도주일을 앞두고도 4년째 전도하고 있는 교회 인근 거점에서 꾸준히 전도하였다. 아직도 시야가 흐릿하고 발음이 다소 어눌하지만, 주님이 보내 주신 동역자와 함께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지역주민을 만나면 오히려 그분들에게 공감하며 진실하게 위로해 드릴 수 있어 복음 전할 마음 문도 빠르게 열린다. 이곳에서 전도받은 이가 교회에 잘 정착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뿌듯하다.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육신은 예전과 달리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내 안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값진 것들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섬겨 주고 기도해 준 많은 믿음의 지체들에게도 지면을 빌려 뜨거운 고마움을 전한다.
오직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는 눈이 되고, 오직 복음만 전하는 입술이 되기를 늘 기도하며 영혼 구원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쏟으려 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며 주님의 신부로서 나날이 안과 밖을 곱게 단장하기를 원한다. 이 모든 일을 하실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이순옥(5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9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