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5-14 14:46:18 ]
나날이 녹음(綠陰)이 짙어지는 요즘, 산과 들은 그야말로 생명의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합니다. 가지마다 돋아난 초록 잎이 완연하게 물들어 서로의 존재를 반깁니다. 나무 아래를 스치는 바람이 그 푸르름을 흔들며 봄의 정취를 조용히 속삭입니다.
녹음 사이로 붉은 얼굴을 내민 철쭉과 영산홍은 마치 자연이 붓으로 그려 낸 수채화처럼 선명하고 단정합니다. 이팝나무도 한창입니다. 가지마다 탐스럽게 핀 흰 꽃은 마치 하얀 눈처럼 수북이 얹혀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향기를 퍼뜨립니다.
계절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요즘 날씨는 하루에도 사계절을 오갑니다. 아침에는 겨울의 쌀쌀한 기운이 남아 옷깃을 여미게 하고, 오전에는 봄 햇살이 어깨를 다정히 감싸 줍니다. 한낮엔 25도를 넘나드는 여름볕이 이마를 덮치고, 해가 기울면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기운이 등을 쓰다듬습니다. 하루를 보내는 사이,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차례로 인사를 나눕니다.
좋은 계절을 맞아 연세가족들은 ‘40일 그리고 10일 작정기도회’에 참석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들을 보냅니다. 삶의 소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에 그분을 향한 사랑과 감사가 절로 솟아납니다.
특별히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이어지며 우리를 품고 지탱해 준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혼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눈물, 선생님의 헌신, 배우자의 인내와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세워진 삶입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한때는 어린아이였던 우리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길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갈 지혜를 익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선생님의 눈빛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는 담임목사님과 우리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사랑을 새삼 기억하게 됩니다.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길 바라며 강단에 서는 목자의 눈빛. 또 말씀과 기도로 성도를 돌보시고 삶으로 예수 생애를 증거하는 목사님의 수고와 섬김은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의 모습입니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은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날입니다. 함께 걷는 길이 때론 울퉁불퉁해도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믿음의 서약을 다시 붙잡는 날입니다. 성경도 말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2:24).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하나 되어 간다는 것은 기적이며 사랑의 훈련입니다. 늘 곁에 있어 주는 배우자와 날마다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사랑을 표현하는 삶.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사랑이 더욱 가슴에 와닿습니다.
어느 해 12월에 우리 가족은 한 해를 결산하는 뜻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쉼이었고 위로였으며, 가족 간에 잊고 지낸 마음을 다시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작은 사진집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때의 바람과 햇살, 웃음과 대화가 선명히 떠오릅니다.
5월이 지나면 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대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절실히 기도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흐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민족 가운데 드러나길 간구할 때입니다.
지도자는 단지 유능한 사람이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고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사람, 눈에 보이는 인기보다 보이지 않는 양심을 따르는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잠29:2).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처럼 들립니다.
오월은 감사하는 달이자 기도하는 달입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위 글은 교회신문 <89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