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13·中>] 유다,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다

등록날짜 [ 2025-05-14 14:57:11 ]

고대 성경 시대에 남편 죽으면

그 형제가 후사를 잇게 하여서

과부 보호할 시형제 제도 시행

다말은 유다 가문 후사 잇기를

열망해 예수가 오시는 길 마련


<사진설명>쉐펠라 평지 전경. 엘라 골짜기, 소렉 골짜기, 아얄론 골짜기 등이 있는 쉐펠라는 해발 100~400m이지만, 예루살렘이 있는 중앙산지에서 내려다보면 평평하게 보였기 때문에 평지라고 불린다. 다말의 사건이 일어난 딤나는 정확한 곳을 알 수 없지만, 이곳 쉐펠라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다말은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Timnah)로 올라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과부의 옷차림을 벗어 버리고 면박을 써서 얼굴을 가린 채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나가 앉았다. 시아버지 유다는 얼굴을 가린 여자를 보고 창녀인 줄 알았고, 담보물을 준 후 동침하고 만다. 이후 다말은 쌍둥이 아들인 세라와 베레스를 낳았고, 베레스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게 된다.


▶윤석전 목사: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한 후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한 곳이 딤나입니다. 딤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딤나’라는 지명이 성경에 네 곳이나 나오므로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 곳은 갈릴리(Galilee) 서쪽의 스블론 지파 땅에 있고, 또 다른 곳은 멀리 마온(Maon) 땅에 있습니다. 삼손의 첫째 부인의 고향도 딤나인데, 이곳은 원래 블레셋 땅이었고 거리도 매우 먼 편입니다.



<사진설명>텔 바타쉬(딤나) 전경. 삼손의 첫째 부인의 고향인 딤나는 소렉 골짜기에 인공으로 세워진 성읍이다. 딤나라는 지명은 성경에 네 곳이나 나온다


다말과 관련한 딤나는 정확한 곳을 알 수 없지만, 쉐펠라 평지(Shephelah)에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엘라 골짜기(Valley of Elah), 소렉 골짜기(Valley of Sorek), 아얄론 골짜기(Valley of Aijalon)가 있는 쉐펠라는 해발 100~400m이지만 예루살렘이 있는 중앙산지에서 내려다보면 평평한 평지처럼 보였기 때문에 평지라고 불립니다. 분명한 것은 딤나는 쉐펠라 평지의 아둘람(Adulam)이나 소렉 골짜기 주변에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쉐펠라 평지의 저지대 모습


▶윤석전 목사: 딤나에서 유다와 다말이 관계하여 예수님의 조상인 베레스가 태어납니다. 다말이 시아버지를 유혹한 이유를 정리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다말의 사건은 자칫 잘못하면 다말의 도덕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시아버지가 시형제 결혼제도를 시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항거라고 봐야 합니다. 다말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유다가 큰아들 엘의 며느리로 다말을 얻었으나 엘이 일찍 죽음을 맞습니다. 시형제 결혼법에 따라 다말은 둘째 아들 오난과 혼인하지만 그 역시 일찍 죽음을 맞습니다. 결국 막내아들 셀라를 다말과 혼인시켜야 하는데, 유다는 셀라의 나이가 아직 어리므로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수절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셀라의 나이가 차도 유다는 시형제 결혼법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자녀를 낳지 못한 다말은 존재 가치가 없는 여인이 되어 버렸기에 유다의 결정은 한 여성의 생존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또 맏아들 엘의 이름을 이어 갈 대가 끊어지도록 놔둔 것이니, 그것마저 직무유기를 한 것입니다.


시아버지가 대를 이어 가도록 시행하지 않은 탓에 다말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섭니다. 유다가 양털은 깎으러 딤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창녀로 가장한 채 약조물을 받아 놓고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결국 다말은 아이를 갖게 되고, 이후 며느리의 소식을 전해 들은 유다는 다말이 부정한 일을 했으니 며느리를 처형하겠다고 펄펄 뜁니다. 그러자 다말은 유다에게 받아 놓은 약조물을 내놓으면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힙니다. 극적인 반전입니다. 한 여인의 과감하고 용감한 도전이 예수님의 족보를 여는 길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어떻게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몰라봤을까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몰라보게 해서라도 그 대를 이어 가서 다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예수님의 족보도 이어 가게 한 역사를 발견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섭리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사모하여 믿음이 앞당겨지기를 소망합니다.


다말은 창녀로 위장해서 시아버지를 속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시아버지와 부정한 관계를 가진 다말에게 자기 자신보다 더 옳다고 말합니다(창38:26). 누가 봐도 그게 옳은 일인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설명>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친정에 가 있던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딤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라는 신분을 숨긴 채 대를 잇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이후 쌍둥이 아들인 세라와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게 된다.


▶권혁승 교수: 네가 나보다 더 ‘옳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의롭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옳다, 의롭다’는 ‘쩨데크(Tsedeq)’라고 하며, 이는 법정 용어입니다. 우리가 법정에 가면 서로가 옳다고 갑론을박합니다. 이는 내가 옳다, 네가 옳다며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인데, 진짜 ‘옳다’는 것은 판사가 최종적으로 “네가 옳다”라고 결론지어야 비로소 진짜 옳은 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도 ‘쩨데크’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옳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의롭게 보십니다. 우리가 의롭지 않으나 하나님이 나를 최종적으로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유다가 “나보다 네가 더 옳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다말 사건에서 옳은 것은 가문의 대를 이어 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회복에 가치를 두고 유다 가문의 대를 이어 간 것이 가장 옳은 일이요, 우선 순위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 우선순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고, 자기가 해야 할 일도 직무유기 했습니다. 반면 다말은 대를 이어 가서 책임을 다해야 할 사람인데 그 기회가 오지 않으니까 몸을 던져서라도 자신의 책임을 이룬 것입니다.


유다가 “네가 나보다 옳다”라고 한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서 “네가 용감했다”, “그래서 이것이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공식적인 인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하여 사람과 사이의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큰 족보론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입을 통해 “네가 옳다”라고 말씀하셨고,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역사를 다말을 통해 이루어 가겠다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옳다는 일을 거침없이 행동해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하고 유다의 가정에 장자를 생산하여 예수가 오시는 대로를 열어 갔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부정한 것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옳다고 여김받은 일을 하였고,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섭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신령한 영적 장자가 되기를 바라며 다말처럼 사모하여 축복을 얻기를 바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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