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23·下>] 솔로몬의 문화 사업

등록날짜 [ 2026-02-12 21:03:56 ]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지혜를 받아

평화의 왕으로서 넓은 영토 차지해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쟁하기보다

문화 사업을 융성하게 꽃피워 내



<사진설명> 팔미라 전경. 사막의 여왕’이라는 별명처럼, 팔미라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거대한 도시를 형성해 고대 상인들에게 사막의 항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솔로몬은 그 당시 다드몰이라고 불리던 팔미라를 차지해 동서 교역의 중요한 거점에 성읍을 건축하며 예수가 오시는 길을 예비했다.



<사진설명>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왕국.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솔로몬은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까지,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과 사우디아라비아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홍해의 아카바만과 애굽 시내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북쪽의 시리아 지역을 조금 더 정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이루었다.



<사진설명> 스바 여왕의 궁전 터인 둔구르(Dungur). 에티오피아 악숨에는 스바 여왕의 궁전 유적지가 남아 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많은 금과 보석을 싸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다.



▶윤석전 목사: 솔로몬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인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탐색해 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0장을 보면 스바(Sheba)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명성을 듣고, 수많은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옵니다. 스바는 어떤 나라인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성경 시대에 존재하던 스바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많은 학자가 연구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 속의 스바 왕국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라고 봅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를 과거의 스바라고 볼 수는 없으나, 스바 왕국이 에티오피아 지역까지 식민지로 갖고 있었을 만큼 큰 나라였다고 추정합니다.


에티오피아의 민족 무용담에 따르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과 사이에서 메넬리크라는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손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면서 솔로몬과 그 신앙에 대한 많은 전승도 남아 있습니다.


또 오늘날 예맨에 있는 사바(Saba)라는 곳이 굉장히 번성한 곳입니다. 그래서 스바 왕국이 예맨에 있었을 것이라고도 추정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에티오피아라고 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많은 금과 보석을 싸 가지고 왔다는 것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했으며, 타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이므로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얻으려고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서 외에도 전도서와 아가서를 기록했습니다. 전도서와 아가서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전도서는 1장 시작부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말합니다. 전도서는 “우리 인간이 육신의 것에 욕심을 낼 때 그 결과가 허무할 뿐”이라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도 떠오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게 받은 달란트를 기뻐하여 가장 큰 유익을 남긴 사람이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육신의 것으로 기뻐할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과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기쁨으로 감당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진하게 담고 있지만, 결국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가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아8: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었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큰 사랑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눅1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영광처럼 인간의 육체도 결국 끝나고 정욕의 욕구도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 시대에 피어 있고 지금도 피어 있는 것처럼, 영구적이고 항구적인 것을 찾고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최고의 기쁨이란 회개의 경험입니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하여 예수를 만났을 때 그 구원의 경험이라는 것은 사람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기뻐해야지 솔로몬처럼 육신의 영광을 위해 즐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가서는 날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하루는 한 자매가 “제가 아무개 형제하고 결혼하겠습니다”라며 찾아왔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결혼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밤늦게 편의점에 가서 라면 한 그릇을 사 주는데 무척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라면 한 그릇에 결혼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은 작은 것 하나로도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주시며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사랑에 얼마나 감사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미칠 만큼 넉넉히 사랑해야겠습니다. 아가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데 피와 목숨을 다 주셨으니 우리도 주님처럼 진실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전도서를 보면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를 솔로몬으로 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보면 솔로몬이 전도서를 썼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보면 사람의 삶이 허무하다고 반복해 말합니다. 만약 거리에 있는 노숙자가 “인생은 참 허무해”라고 한다면 ‘노숙자의 인생이니 허무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려본 솔로몬이 “세상은 허무해”라고 하니 큰 무게감이 실립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만이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도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살아도 예수 몰라서 죄 아래 살다가 영혼의 때에 심판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러나 가난하고 비천하고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나사로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이 땅을 떠날 때 낙원에 이른다면 얼마나 영원한 행복이겠습니까. 전도서는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의 안보를 위해 마음 쏟고, 문화 창달을 위해서도 굉장히 노력하며 초강대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평가하시기를 솔로몬의 영광이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와 비교할 때 그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오직 솔로몬은 한 시대에 폈다가 지는 백합화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환하게 비춰 주는 등불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오신다고 예표해 주는 족보 속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솔로몬과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주님은 원치 않습니다. 오직 잠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과 사이를, 하나님과 사이를 잘하기를 바라십니다. 또 아가서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을 마음 다해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솔로몬의 생애를 살펴보며 족보에 나타난 주님이 오시는 길과 그 사역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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