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이야기 361] 피 묻은 돌 제단 앞에 온 백성을 세우다

등록날짜 [ 2026-03-04 13:34:06 ]

내 성공이라는 환각과 욕망을 찢고

가감 없는 말씀의 칼날 앞에 서라



아이 성이 불탔다. 잿더미 위에서 병사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여리고에 이어 두 번째 승리. 사기가 오른 지금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야 했다. 적이 연합하기 전에 쳐야 이긴다. 세상의 병법은 그렇게 말한다.


여호수아가 군대를 돌렸다. 남쪽이 아니라 북쪽, 세겜. 사십 리가 넘는 길을 수십만 백성이 적진 한복판을 뚫고 행군했다. 도착한 곳은 축복의 산 그리심이 아니었다. 저주의 산 에발. 그 척박한 꼭대기에서 여호수아가 돌을 쌓았다.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투박한 돌. 사람의 기술이 닿지 않은 제단이었다.


제단 곁에서 짐승의 목을 잘랐다. 쏟아진 피를 받아 제단 사면에 뿌렸다. 가죽을 벗기고 뼈마디를 꺾어 토막 냈다. 장작 위의 고깃덩어리를 온전히 태웠다. 죄인을 대신한 번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 36명이 죽어 나간 아이 성 참패의 기억이 생생한 백성들 앞에서, 여호수아는 승리를 자축하지 않았다. 이 전쟁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 승리가 누구의 공로인지를 피로 고백한 것이었다.


불길이 잦아들자 여호수아가 큰 돌들을 세웠다. 거친 표면에 석회를 바르고, 하얗게 마른 바탕 위로 모세의 율법을 검고 선명하게 기록했다. 전장 한복판에서, 적이 사방을 둘러싼 그 시간에. 아간 한 사람의 불순종이 공동체의 숨통을 끊은 아이 성 참패를, 그는 자기 병사들의 시체로 배웠다. 말씀 위에 서 있지 않은 군대는 오합지졸이다. 석회 위의 글자는 숨기거나 흐리게 할 여지 없이 또렷했다.


여호수아가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수8:34). 축복의 말씀이 그리심산 쪽으로 울렸다. 저주의 말씀이 에발산 골짜기를 때렸다. 심판의 경고까지 한 글자도 빼지 않았다. 목이 곧은 백성들 앞에서 죄를 가릴 무화과잎 한 장 허락하지 않았다. 장로와 관원만이 아니었다. 이방에서 따라온 객까지 언약궤 앞에 섰다. 혈통과 지위가 장벽이 되지 못했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그 기준만 남았다.


제단은 저주의 산에 서야 했다. 율법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낼 제물이 놓일 곳은 축복의 땅이 아니다. 수천 년 뒤, 다듬지 않은 나무 위에 한 사람이 못 박혔다. 에발산이 선포한 저주를 짊어지고, 죄인의 형벌을 대신 받은 바 되셨다. “다 이루었다.” 피 묻은 제단은 처음부터 골고다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승리한 날 이를 축하하지 않았다. 저주의 산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석회 바른 돌에 말씀을 기록하고, 가감 없는 율법 앞에 온 백성을 세웠다. 내 성공이라는 환각, 인정받으려는 그 역겨운 욕망을 찢어버려라. 피 묻은 제단 밑으로 기어 들어가 엎드려라.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3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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