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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실 국팀장 천희자 집사

매해 흰돌산 수양관 성회 때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누가 끓이기에 국 맛이 이리 구수할까?” 씨라기, 미역, 콩나물 등 그저 소박한 야채들로 그 속 맛을 우려내는 기막힌 솜씨, 알고 보니 13년째 국 맛내는 충성을 해온 노장의 범상한 노하우가 스며 있었다는데… 주방에서 국 만드는 것밖에는 받은 은혜 표현할 길 없었다는 천희자 집사. 그녀가 이 방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중풍 병으로 쓰러진 남편, 어린 아들아이, 살림 외에는 재주가 없는 주부 그래서 먹고 살 길 막막… 그런 이유로 그녀는 보험 설계사로 생계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 덕분에 들어선 망원동의 연세중앙교회!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보험설계사와 교회 충성 중 선택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제가 저희

2004년 01월 08일

차량실 실장 정영민 집사

믿는 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그리스도인, 집안의 가장, 회사의 조합간부, 이 세 가지 분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역할을 어긋남 없이 해내려면 말이다. 이 작업을 현실 속에서 능력 있게 이루어 낸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대답은 YES! 그러기에 그는 참으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정영민 집사! 그에 대해 모락모락 일어나는 호기심을 애써 참으며 수정 아파트 그의 가족이 머무는 보금자리를 두드렸다. “사실 저도 교회 다니는 마누라를 엄청 핍박하던 남편이었습니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 웃음기를 가득 채우며 아내를 쳐다보는 그는 영락없는 애처가 남편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핍박하는 남편’이라는 전적이 있었다니, 남편의 말에 아내 김미자 집사는 미소를 머금으며 응수했다. “저는 처녀 때부터 교

2004년 01월 08일

[생명의 말씀]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요한복음 14 : 1∼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만물에게 주어진 직분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것들을 사랑하시고 기르시고 가꾸시며 창조하신 목

2004년 01월 07일

제27차 초교파전국목회자부부영적세미나

연세중앙교회 선교부가 주최한 제27차 초교파 전국목회자 부부 영적세미나가 2월 24-27일 수원흰돌산수양관에서 전국 담임 목회자 및 사모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목회자에게 영적 도전을 주는 국내 최대의 집회로 자리잡은 이 세미나의 주강사인 윤석전 목사는 “한국교회가 ‘제2의 부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의 영적인 각성이 선행되야한다”고 절규하였다.

2004년 01월 07일

간경화합병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오늘을 못 넘기겠습니다” 작년 4월 말경, 앉았다 일어서려는데 순간적으로 엉덩이가 뜨끔 하더니 통증이 왔다. 평소에 밥보다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술을 조금 과하게 마시면 통증이 사라지겠거니 하고 며칠째 계속 과음을 했다. 그런데 열흘째 되던 날 갑작스럽게 ‘아야’ 소리도 못 지를 만큼 심한 허리 통증이 몰려왔다. 방 네 귀퉁이를 기어서 헤매고 다니며 신음하던 중 아래채에 세 들어 사는 분의 도움으로 119구급차에 실려 논산 B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식사 두 끼 먹은 이후 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내 기억의 필름 속에는 아무 것도 담긴 것이 없다. 도대체 그 사이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남동생 민영기 집사가 B병원에 도착한 것은 내가 이미 혼수상태에

2004년 01월 07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그대로

잇따른 유산 (流産)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했다. 학교에 다녀오기가 바쁘게 책가방을 던져놓고 동네 아이들을 봐주러 이 집 저 집 뛰어다녔고, 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와서 예수님을 만난 후엔 개척교회 목사님 자녀며 성도들의 자녀 봐주는 일을 도맡아 했었다. 그렇게 유난스러울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게는 웬일인지 결혼 9년이 지나도록 진정 사랑을 쏟아 부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그렇다고 우리 부부 사이에 아예 아이가 잉태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세 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첫 번째 아이는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잘 자랐는데 출산과정에 문제가 있었던지 질식한 상태로 태어났고, 종합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그만 체온이 싸늘해

2004년 01월 07일

환청의 공포는 사라지고

환청 5년 전, 건강하던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 광주에서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해서 자수성가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기반을 잡았을 무렵, 어느 날 한번 체한 후로 통 음식을 먹을 수 없더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친정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덜컥 겁이 났다. 위내시경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날이 갈수록 기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몸에 좋다는 약을 수소문해서 지어다 먹었지만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차도가 없고 몸은 점점 더 심하게 아프기만 했다. 이참에 편히 쉬라며 남편이 가게를 처분해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집에서 편히 쉬었는데도 몸이 낫기는커녕 점점 더 눈에 띄게 바싹 여위었다. ‘이러다가 친

2004년 01월 07일

악한 영은 소동치고 떠나가고

미신적 행위를 다해보았지만… “굿해서 조상이 도와야 살지 안 그러면 같이 못 살아!” 결혼한 지 2년째 성격 차이로 남편과 잦은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이혼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자 불안 초조한 마음달랠 길 없어 무작정 무당을 찾아갔다. 냉정해진 남편 마음이 돌아선다면 무엇이든 못하랴 싶어 거액을 주고 여러 번 굿판을 벌였으나 신통한 효험이 없었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역술인, 점쟁이, 철학관 등을 미친 듯 찾아 헤매며 부적, 액막이 등 온갖 미신적 행위를 다 해보았지만 남편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고, 내게 남은 것은 정신적 허탈감, 배신감, 의심증, 우울증, 온갖 세상 걱정 근심뿐. 대학졸업 후 오랫동안 근무하던 유치원

2004년 01월 07일

27년간 전도관에 다녔으나

27년간 전도관에 다녀 1948년에 인천에서 태어난 나는 열 살 때부터 27년간 사이비 이단 집단인 전도관에 다녔다. 전도관에서도 초창기에는 예수 이름으로 각색 병자들을 고치는 등 기이한 이적을 행했기에 6·25 전쟁 직후 헐벗고 배고프고 무엇엔가 갈급해 하던 한국강산 처처에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전도관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던 중 박태선은 58년부터 “말세에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는다!”며 신앙촌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집단생활을 하게 했으며, 신도들이 바친 재산과 노동력으로 신앙촌을 거대한 기업으로 확장시키고, 자신이 기도한 생수(生水)를 먹고 아픈 데 바르면 병이 낫는다는 등 비성경적인 행동을 했다. 우리 가족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모두

2004년 01월 07일

도하부대 위문 찬양집회

지난 2월 15일(토) 오후 6시 서울시 금천구 소재 도하부대 내 도하교회 본당에서 약 200여명의 군 장병신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세중앙교회 군선교실 주체로 위문 찬양집회가 열렸다. 도하교회에 출석하는 군 장병신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힘든 부대생활에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 도하교회가 더욱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찬양집회였다. 군장병들과 군선교실원들이 연합하여 부른 열정적이고도 뜨거운 찬양은 군인들의 굳게 닫혀진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아 교회는 순식간에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고, 뒤이어 올려진 스킷 드라마는 무뎌진 그들의 심령에 새롭게 구령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불씨와도 같았다. 룸메이트를 전도하려는 한 학생의 이야기로 ‘사랑 없는 전도는 부질없는 논쟁’이라는

2004년 01월 05일

모든 청년들이 비전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군 전역 후 95년도 여름, 흰돌산 수양관 성회에 처음으로 왔을 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성회도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번엔 청년회 전도사를 맡아 인솔자로 왔기 때문에 은혜만 받고자 사모했던 예전과는 사뭇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본 교회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와 지원을 힘입고 2003년 새롭게 부흥을 꿈꾸는 저희 청년들은 이번 성회를 위해 일주일간 기도회와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번 성회를 통해 크신 은혜와 은사들을 우리 청년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모든(정말로 모든) 청년들이 회개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비전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성극, 콘서트, 뮤지컬 등 문화행사였습니다. 교회에서 찬양단을

2004년 01월 05일

캠퍼스에 하나님의 소리를 전하는 찬양팀이 되기를

새 천년 비전성회를 통해 은혜 받고자 왔습니다. 이번 성회를 통해서 영적인 혁명이 일어나 명지대 캠퍼스 안에 하나님의 소리를 가득히 전할 수 있는 찬양 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흰돌산 수양관 성회는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사운드 오브 명지’의 신디를 맡고 있고, 관악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될 사역과 비전을 놓고 기도했는데 이번 성회를 통해서 도전을 주시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며 나아가고자 합니다.명지대학교 찬양 연주팀

2004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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