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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윤리 도덕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윤리 도덕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1993년 3월 28일 주일 낮예배, 담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오랜 불신 생활에 지치고 지친 나에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해답이 바로 이것이구나!’ 라고. 기독교의 평안은 고뇌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을 포기한 대가라고 생각해 어릴 때는 복음을 접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었다. 대학에 와서는 학내의 여러 기독교 선교단체 덕택에 복음을 접하게 되었지만 나는 거부하고 있었다. 왜냐 하면, 역사를 볼 때 기독교 교리는 사람들에 의해 보충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경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도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학가를 지배하던 유물론의 영향으로 기독교인들의 믿음도

2004년 06월 17일

생명력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따분하고 재미없는 사람들, 그저 착하고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만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오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의 외모는 언제나 귀공자 같은 인자한 모습, 근엄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소유한 성인군자 같은 모습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사 53:2-3)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기도 하셨으며(마 21:12),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질타

2004년 06월 17일

한 사람의 성회 참가로 온 가족 구원 받고

죽음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생각한 사람 나는 대학에서 토목 건설구조공학을 공부하고 서울시 영등포 수도사업소에서 상수도 공사를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작년 4월, 진급시험 준비차 노량진 학원가에 왔다가 우연히 학습비디오 가게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연세중앙교회 ‘이웃초청 예수사랑 큰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그날, 윤석전 담임 목사님께서 초청되어 온 불신자들 앞에서 온 몸으로 애끓듯 설교하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인생을 육신을 위해 다 써버리고, 영혼을 위해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단 한 시간의 여유도 갖지 못한다면 육신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날, 그의 영혼이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하실 때는 온몸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압도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저 목

2004년 06월 11일

독수리의 비행훈련

독수리가 그 새끼를 강한 한 마리의 독수리로 훈련시키기 위한 비행훈련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혹독한 그 훈련으로 인해 독수리는 언제나 날아다니는 짐승의 우두머리로 하늘을 장악한다. 독수리는 본디 강한 날개를 부여받고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공을 치솟아 오르며 힘있게 비행하거나 그 예리한 부리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새끼를 훈련시키기 위해 어미 독수리는 아슬아슬한 절벽바위 턱에 있는 독수리의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그의 부리로 어린 새끼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뜨린다. 어설픈 날개짓과 비명소리에 뒤엉켜 끝을 모르고 추락하던 새끼들은 어느새 포근한 어미의 날개 위에 얹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미 독수리는 그들을 안전한 곳에 밀어 올린 후 또다시 떨어뜨린다. 훈련이 되풀이 되면서 새

2004년 06월 11일

"공황 공포증" 몰아낸 기도의 능력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곧 죽어버릴 것 같은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 출근을 하려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체한 듯이 식도에서 위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꽉 막히면서 숨 쉬기가 힘들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몸에 기운이 다 빠져 나가더니 숨이 멎어 곧 죽어버릴 것 같았다. ‘맥도 못추고 죽는다’는 말이 이런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꼼짝달싹도 못하고 한참 누워 있었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해졌다. 그 후에도 2-3일에 한 번씩 같은 시간에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다. 병원에 가서 신체 검사를 했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사람이 2-3일에 한 차례씩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으로 먹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데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의사에게 그 동안 나에게 일

2004년 06월 10일

베드로와 성령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를 부인했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대한 자책감과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라고 굳게 믿었던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베드로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좌절 뿐이었다. 다시 옛날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갈릴리 바닷가로 향하는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이제 삶의 목적과 희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인생의 실패자일 뿐이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주님과의 짧은 만남의 기간 동안 함께 했던 추억들 뿐이었다. 만약 베드로의 인생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의 생애는 물론 이름조차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삶이 새롭게 기억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성령과의 만남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

2004년 06월 10일

예수 안에 행복한 우리 집

1992년 7월, 대학교 후배인 희정이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3박4일 동안 놀러 가는데 같이 가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해서 경기도 마석 기도원에서 열리는 연세중앙교회 하기산상성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찜통 같은 더위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설교를 아침 저녁으로 듣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중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희정가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끝까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회 삼일째 되던 날은 혹시 계실지도 모르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 맘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이제 겨우 자유하게 되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다시 억압받고 싶진 않아요. 멋있게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아기도 낳

2004년 06월 09일

그리스도의 편지

이 시대의 영원한 베스트 셀러는 단연 ‘성경’이다.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베스트 셀러로 기록되어지게 된 것은 종이의 발명과 인쇄기술의 발달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입으로 전해지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이 만약 종이가 없고 인쇄기술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서선교의 시작은 바로 성경이었다. 우리 교회 문서선교의 역사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던 교회 주보와 청년들이 만든 청년회 주보가 그 시작이었다. 특히 청년회 주보는 청년들이 손으로 직접 써서 복사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인쇄 매체를 통한 우리 교회 문서선교의 효시와도 같다. 그 주보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청년들의 땀과 정성과 삶이 담겨져 있으며,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우리 교회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도

2004년 06월 09일

내 청춘 앗아간 술에서 해방

술과 싸움질로 경찰서에 드나들던 문제아 나는 1956년에 전라도 장성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가정의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에는 순진하고 착하게 자랐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싸움질도 잘 하는 문제아가 되어버렸다. 졸업반 때는 싸움질로 두 번이나 경찰서에 잡혀 가기도 했으나 부모님과 큰형님이 애를 써 주셔서 무사히 풀려 났다. 졸업 후에도 친구들과 싸움질을 한 것이 집단 폭행죄로 고소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경찰에 붙잡히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나서 무작정 도망을 쳤다. 불심검문을 피해 서울로, 부산으로 아는 사람들과 형님댁을 찾아 다니며 폐를 끼쳤고, 도피생활이 계속되자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계속 술만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는

2004년 06월 05일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아내를 고칠 수만 있다면...

아내 위암 말기 선고에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몇년 전부터 아내가 자주 구역질을 하고 가끔씩 토하기도 하기에 위궤양인가 생각하다가 1998년 2월에야 뒤늦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위암 말기인데 췌장까지 퍼진 상태라서 수술하지 않으면 2-3개월 살기도 힘들고, 수술을 하더라도 일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몸이 약한 아내가 위장의 3분의2 가량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고 퇴원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독한 항암제를 투여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삶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수술에 동의할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을까봐 아내에게는 아

2004년 06월 04일

눈물로써 못 갚을 하나님의 크신 은혜

굿하고 제사 지내고 조왕신께 빌었어도... 나는 갯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경상남도 삼천포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바닷가 지역은 원래 미신과 우상숭배가 심한 지역인데 우리집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우상숭배가 심했다. 굿도 자주했고, 명절이면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에 배에 가서 고사까지 지냈으며, 할머니는 부엌에 조왕신을 모셔놓고 자손들 잘 되게 해 달라고 두손 모아 비셨다. 그러나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온갖 신들을 섬겼어도 집안에 우환은 끊어질 날이 없었다. 독자인 오빠는 홍역으로 귀먹어 오십 평생을 말 못하는 신세로 살고 있고, 나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서른 두 해 동안 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온갖 질병으로 고통 당해

2004년 06월 03일

다시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으리

아이도 낳지 않은 새댁에게 자궁암이라니! ‘따르르릉....’ 1999년 4월 6일 새벽 1시. 날이 새면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밤새도록 잠 한숨 제대로 못자고 아침일찍 병원에 갔더니, 자궁암이라고 했다. 아직 아이도 낳지 않은 서른살 새댁인 나에게 당장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나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사랑하는 남편도 친정엄마도 아닌, 사촌언니였다. 나만 보면 믿음생활 잘해야 한다며 성령충만한 자기네 교회에 한번만 가자고 귀찮게 성화를 대서 아예 그 언니를 피해다녔는데, 이 절망의 순간에 그 언니가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인가? 내가 주님 곁을 떠난 지 어느 덧 십년. 나는 그 동안 주님을 외면하고 육신의 만족과 세상적인 행복만으

2004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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