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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를 전해주자

고린도전서1:18~2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2004년 02월 24일

영적 대각성 운동이 벌어지는 동계성회

2004년 동계성회가 연일 성황을 이루면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신년 축복 성회를 시작으로 2개월간 이어지는 성회는 참석하는 대상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으로 그들의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성회마다 통곡과 눈물로 변화를 다짐하는 회개의 거룩한 행렬들이 끊이지 않았다. 점점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성령의 역사가 메말라 가는 이 시대에 놀라운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이곳 흰돌산 수양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에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이며 축복임에 분명하다. 매일 매일 이곳 흰돌산 수양관에서 들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타난 화제와 사건들은 이 시대의 부흥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남은 성회 기간 동안 물이 바다를 덮는 듯한 부흥의 물결이 더욱 거세게 일어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주여,

2004년 02월 24일

개 혁

요즘 이 사회는 온통 개혁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진정한 개혁자임을 호소하고 기업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감한 혁신을 단행하고 있다. 개혁을 외치는 소리는 그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에나 항상 있어 왔다. 예수가 등장하는 시대 역시 어느 때보다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야에서 들려오는 침례 요한의 외침과 나사렛 예수의 이적과 표적의 소식은 그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당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유대 종교 지도자를 향하여 강력한 회개를 외치던 당당함, 바다의 폭풍을 한마디로 잠재우고 병든 자를 고치고 무덤 속의 죽은 자를 벌떡 일으키는 예수의 능력을 지켜보며 그들은 로마의 권세가 그 앞에

2004년 02월 24일

2004년도 신년인사

하나님께 올바른 열심을 내는 신약교회로 전진 2년 과정의 평신도 성경대학이 햇수로 4년째 접어듭니다. 이미 제1기 평신도 대학생들을 졸업시켰고, 2003년 제2기 학생들을 모집해 벌써 1년이 지나고 올해 2004년에는 제2기 학생도 졸업을 하게 됩니다. 이젠 걸음마 단계는 벗어나서 막 달릴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평신도 성경대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들을 보면 교수들은 힘이 납니다. 평신도 성경대학은 2004년 새로이 학생들을 모집하여 이미 1년 공부한 학생들과 합류하여 공부시킬 계획이 있습니다. 평신도 성경대학은 우리 연세중앙교회의 정통신앙의 진원(震源)이요 보급소요, 저수지가 된다는 긍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뜨겁지만 차고, 차지만 뜨겁

2004년 02월 19일

내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니…

이태원 점집과 연세중앙교회! 나는 이 두 곳을 통해 차례로 엄청난 영적 체험을 겪었다. 그것은 거짓과 참, 저주와 축복, 두려움과 평안, 죽음과 생명의 체험이었다. 3년 전, 고교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직장 언니가 점보러 가자고 하길래, 미신인 줄 알면서도 '재미삼아 보는 건데 어때' 하며 따라 나섰다. 이태원의 한 점집에 가서 점을 보는데 그 무당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희 외가는 조상대대로 무당 집안인데 지금은 누구도 신(神)을 섬기지 않는구나. 네 이모는 신을 안 모시려고 교회에 다니고, 외삼촌은 스님이 되고…. 그러니 네 조상들이 가만히 있겠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외가의 내력을 속속 알아 맞추는 신통력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러더니, “네

2004년 02월 19일

7차 단기선교 더 높이, 더 멀리 주님과 함께 열방으로

▲ 사도행전적 복음전도의 회복 청년회 해외선교부의 해외단기선교사역이 올해로 7차를 맞이했다. ‘사도행전적 선교를 회복하라’는 비전을 가지고, 97년 필리핀 선교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역을 했고, 이번에는 영국과 파키스탄이 새로운 사역지로 등장했다. 그동안 선교팀은 돈과 문명을 들고 간 것이 아니다. 왕성한 복음 증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이적과 하나님의 역사가 체험되었을 때, 수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이와 더불어 단기 선교팀은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시키며, 리더를 세우는 교육 사역을 하는 등, 그야말로 사도행전적 복음 전도의 행진에 박차를 가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 7차 단기선교의 특징 이번 7차 단기선교는 지

2004년 02월 19일

2004 직분자감사예배

2003년 12월 마지막 주일에는 신임서리집사의 임명이 끝나고 제직을 재정비한 후, 직분자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를 통하여 직분자들은 잃어버렸던 각자의 십자가를 찾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윤석전 담임목사는 “우리가 구원받은 그 기쁨과 영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다. 예수님의 직분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기에 수많은 핍박과 가시관의 찔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과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늘 우리의 직분은 곧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다. 지금까지 우리의 십자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힘들다고 포기하진 않았는가? 아니면 직분이 벼슬인 것 마냥 교만하진 않았는가? 우리의 십자가는 장신구가 아니고 주님께서 맡기신 구령의 사명을 가진 징표다. 그러므로 험한 파도와 비바람이

2004년 02월 19일

C국 김용식 선교사 집사안수

지난 성탄절 연세중앙교회에서는 많은 성도들과 기독교한국침례회 한양지방회 임원단이 참석한 가운데 하나님의 큰 일꾼을 세우는 집사 안수례가 있었다. 이날 안수 받은 김용식 선교사는 C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C국 정부의 감시를 피해 복음을 전파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온 일꾼이다. 김 선교사는 외국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는 곳에서 현지인들을 선교사로서 양성할 수 있는 장소 제공과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책과 기독교 관련 서적을 지원하는 일과 수많은 현지 선교사들과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복음전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 전액을 지원하며 교역자가 부족한 이곳에 교역자를 양성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신학교를 설립했다. 이번 안수례는 이러한 김용식 선교

2004년 02월 19일

최고의 시설 ‘목양관’ 완공

흰돌산수양관 목양관이 최근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12월 31일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흰돌산수양관 내에 위치한 목양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난해 4월 11일 착공해 지난 12월 15일에 공사를 마무리 했다. 권혁봉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목양관 건축 입당 감사예배는 연세중앙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우리 교단 목회자들이 참석해 순서를 맡아 입당을 축하했다. 이날 증경총회장 양재순 목사가 설교했으며, 조성군 안수집사가 건축경과보고를 했다. 또한 윤석전 담임목사는 건축을 위해 수고한 관계사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410평의 건축 면적에 1천37평의 연면적을 자랑하는 목양관은 이름 그대로 목회자들을 위한 수양관내 특별 목적의 시설로 건축되었다. 목회자를 위하고자 하는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담임

2004년 02월 19일

2004년 신임서리집사 간증

아픔으로 묻어둔 과거 저는 비교적 부유한 교육자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중앙청 교육부 차관으로 재직했는데, 5.16혁명 당시 부하직원의 모함에 의해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셨습니다. 재판도중 혐의는 벗어졌지만 그 일로 인해 결국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14세였고, 바로 밑의 동생마저 원인 모를 병으로 제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작은 형도 군 복무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망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맏형이 의과대학을 중단하고 가정을 돌보기는 했으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저희 형제는 뿔뿔이 흩어졌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과 남은 가족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며 고통과 슬픔을 한쪽 가슴에 묻은 채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2004년 0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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