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16··下>] 믿음의 여인 룻

등록날짜 [ 2025-07-23 10:44:38 ]

<사진설명>베들레헴 전경.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땅 중 북쪽에 있고, 10㎞ 떨어진 예루살렘과 높이가 비슷한 산악지대에 있다. 모압 땅에서부터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붙좇은 며느리 룻의 종착지가 바로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다.


모압 땅에 살던 이방 여인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

믿음의 고백하며 시어머니 섬겨

하나님께서 특별한 믿음 보시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르게 하셔


▶윤석전 목사: 오늘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 구원 사역을 이루실 일을 마태복음의 족보 속 인물들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온 룻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김호경 교수: 일반적으로 보면 룻은 가난한 과부이고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입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룻을 만났을 때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룻2:11)라고 말합니다. 이는 보아스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룻이 존중할 만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룻이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룻의 신앙 때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기 1장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만, 룻은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룻1:16~17)이라고 말합니다. 이방 여자가 이 같은 고백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처럼 룻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가족과 고향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여자였고,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로써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한 후 룻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룻이 점점 등장하지 않습니다. 보아스와 결혼한 후 하나님의 은혜로 룻이 아이를 출산하는데, 룻이 아이를 낳은 후 동네 여자들이 와서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축하를 건넵니다. 심지어 “나오미가 아이를 낳았다”라며 나오미에게 아이를 줘서 나오미가 양육하게 됩니다. 아이 이름도 ‘나오미가 낳은 아들’이라는 의미로 오벳이라고 붙입니다.


룻기를 읽다 보면 ‘왜 엄마인 룻이 아기를 키우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다윗의 조상인 오벳에게 이방 여인의 피가 들어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나오미가 아니라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마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족보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속에 이방 여인을 넣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데, 이는 룻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사진설명>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베들레헴에서 살던 나오미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모압 땅으로 가서 룻을 며느리로 맞고, 룻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며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복을 받는다.


▶윤석전 목사: 룻이 낳고 시어머니가 기르게 되었으나, 룻과 시어머니가 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라고 생각할 때 예수님의 족보의 의미가 더 새롭게 비춰지는 듯합니다. 그동안 다말과 라합 그리고 룻에 이르기까지 족보에 나온 여인 세 명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실린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다말, 라합, 룻은 이방 여인이었고 비천했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내세울 것이 없는 이들이었으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누구도 할 수 없는 믿음의 결단을 내린 여인들입니다.


다말은 불의를 적극적으로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또 라합이나 룻은 자기 종족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의 여인들의 모습을 족보에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이 신앙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구원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남자도 여자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주인도 종도 모두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온 여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들의 믿음이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 당시 이방인으로서 족보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열망하고 믿음을 가진 자가 족보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믿음에 이르지 못하면 버림받는다는 섭리를 보여 주는 듯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듯하여 은혜가 됩니다. 여기에 추가해 이스라엘이 감추고 싶어 한 것을 예수님의 족보가 폭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사진설명>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교회. 베들레헴은 예수 탄생 당시에는 아주 작고 초라한 시골 동네였으나, 4세기 이후 예수탄생교회가 세워지자 기독교 순례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김호경 교수: 앞서 살펴본 여인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인물들입니다. 다말과 시아버지 유다의 경우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또 기생 라합과 이방 여인인 룻이 들어온 것도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족보에서는 굉장히 부끄러운 사실이요, 오욕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마태복음의 족보가 굉장히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마태복음 족보는 자신들의 부끄러움까지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족보입니다. 자신들의 우월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유대인을 공격하는 족보입니다.


심지어 세 여인에 이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1:6)를 볼 때 이 이상 이상한 족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족보는 밧세바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만 말합니다. 이러한 족보를 통해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불의한가를 보여 주면서,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떠올려 보면 족보라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결단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진설명>예수탄생교회 입구에 있는 겸손의 문. 높이 120㎝, 폭 100㎝인 겸손의 문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든지 겸손해야 하고, 겸손한 자만이 예수 탄생을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윤석전 목사: 룻은 이방 지역인 모압에서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옵니다. 시어머니가 고향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시어머니와 함께 죽고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그 하나님으로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고백을 듣고 얼마나 감동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의 특별한 믿음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삼아서 예수가 오시는 발자국으로 쓰셨습니다.


룻이 이 세상에 살 때는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얼마나 깨달았겠습니까. 그러나 후대에 마태복음 족보에 기록될 만큼 그 여인이 살다 간 존재를 예수가 오시는 길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나라는 존재를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말고 어느 땐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가 오시는 대로
<16회>시청

위 글은 교회신문 <90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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