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바이블아카데미(YBA) 교육국 ‘마가복음 통독’ 수료식
“복음 전도에 저를 사용해 주세요!”
등록날짜 [ 2026-03-10 09:52:04 ]
사람은 감정이 있어서 기쁘면 웃을 줄 알고, 속이 상하면 슬퍼할 줄 알고, 누명을 쓰면 억울해할 줄도 압니다.
또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울 줄 알고, 내가 어려울 때 남에게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서로 이해하며 사랑할 줄도 압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이 표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눈물이라도 세상에서 흘리는 눈물과 기독교 안에서 흘리는 눈물은 다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이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지난날 효도하지 못하고 더 잘해 드리지 못한 후회와 통한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이별의 아픔 때문에 통곡하고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부모님께 잘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겠으나, 그동안 부모를 위해 더 기도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해서 부모님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 아파서 웁니다.
반면에 부모님이 예수 잘 믿고 돌아가셨을 때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입어 영원히 행복한 하늘나라에 간 것이 감사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감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안에서 조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로 구원받고 예수로 기뻐하는 삶
지난날 우리의 감정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 때문에 화를 냈으며, 무엇으로 낙을 누리고 살았습니까? 만일 세상에 파묻혀 향락과 쾌락을 즐기면서 그것으로 기뻐했다면, 그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라 통곡하며 울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은 그가 죽어서 매장되는 무덤과도 같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일에 기뻐했다면 그 감정은 예수 밖의 감정입니다. 죽은 감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인격을 물려받아 자기의 감정을 올바르게 사용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사는지 죽는지도 모른 채 죽는 자리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했다면 죽은 감정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인간을 지으신 뒤에는 그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27~31).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던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인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격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생각이요,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대부분 세상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자기만의 최고의 기쁨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만약 육신의 쾌락을 즐기는 것으로 죽을 때까지 기뻐했다면 정말로 큰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