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등록날짜 [ 2005-04-02 17:56:01 ]


8년 동안 손님처럼 연세중앙교회 주위를 맴돌다가 돌아온 탕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시고 구원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이 진한 감동으로 전해온다.


2003년 1월, 나는 연세중앙교회의 교인이 되겠다고 컴퓨터로 교인 등록을 했다. 교회에 발을 디딘 지 무려 8년만의 등록이었다. 오랜만에 교회에 갔더니 감회가 남달랐다. 손뼉치며 찬양 부르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애절하게 기도하는 뜨거운 예배모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이상한 사람들’ 취급했던 그 때와 다르게 오히려 그 모습들이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주여 나를 멀리 마옵소서
신혼초 나를 연세중앙교회로 인도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원래 연세중앙교회에서 첫사랑의 믿음을 불태웠던 사람이었다.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고 곧 후회했으나 다시 돌아가자니 돌아가는 길목에는 자존심이 가로막았다. 가정을 꾸리자 신앙생활을 잘 해보려고 교회를 찾았으나 이번엔 예수가 누군지, 성령 충만이 뭔지 전혀 모르던 내가 가로막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편은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연세중앙교회를 나는 ‘절대 안 간다’고 하면서도 일년이면 몇 번씩이나 찾았다. 처음엔 지방에 사는 시누이가 설교 테이프를 사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갔고, 나중엔 스스로 찾아갔다. 맨 뒷자리에서 듣는 설교 말씀은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화는 옛날이야기처럼 너무나 재미있었다. 세상에 빠져 까마득히 교회를 잊고 살다가도 윤석전 목사님이 빙그레 웃어가면서 예화를 전해주시는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면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연세중앙교회로 달려갔다. 일년이면 한두 번씩 8년 동안 연세중앙교회 주위를 맴돌았다.
3년 전 2002년 12월 중순경 연례행사처럼 연세중앙교회를 찾았다가 이사 간다는 광고를 들은 후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적어도 일년에 한두 번은 연세중앙교회에 가야 마음이 편한데...’ 정말 큰일이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한 남편의 말이 현실로 느껴졌다. 두렵다 못해 공포감마저 들었다. 몇날 며칠 잠 못 이루다 동네 교회를 찾아가서 난생처음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제 정말 예수를 믿고 싶다고, 성경책을 한 권 다 읽을 테니 꼭 예수 믿게 해달라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 전세 기간이 만료돼 이사를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데 자꾸만 인천 쪽에 마음이 끌려 부평으로 이사한 후, 친정집에 맡긴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전철을 탔다. 30분 뒤 전철 창밖을 보는데 멀리 ‘연세중앙교회’ 간판이 보였다. 확인해보니 내가 찾던 바로 그 연세중앙교회였다. 하나님이 예수 잘 믿으라고 주신 기회다 싶어 곧장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바로 교인등록을 했다. 그리고 주일날이 되자 일찍 연세중앙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내가 예배드리는 동안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뜨거운 성령체험
교회에 등록한 지 열흘쯤 되었을 때였다. 교구장님이 금요철야예배를 드린 후 집에 가지 말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나 같은 초신자가 어떻게 밤을 새워 기도를 하나?' 라는 걱정이 앞섰으나 순종했다. 밤 2시, 성전은 성도들의 기도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교구장님이 곁에서 중보기도 해주니 기도가 잘됐다. 예수 잘 믿게 해달라고 한참을 기도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더니 생각지도 않은 회개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30년 동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와 동시에 혀가 말려지면서 이상한 소리가 커다랗게 나왔다. 분명 방언이었다. 8년 전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한다고 연세중앙교인들과 남편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던 바로 그 이상한 말이 내 입에서 터져 나올 줄이야! 당황했다. 그래도 방언은 계속 강력한 속도로 터져 나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됐지만 닦을 겨를이 없었다.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 내 영혼의 절규는 너무나 강력했고, 나는 내 영혼의 울부짖음에 합류하여 울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확실히 믿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 가는 점이 있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데 어떻게 20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그것도 머나먼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살다 죽은 사람이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목사님이 괜히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거짓말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의심이 더해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전도회에서 성경 퀴즈대회를 한다고 해서 마태복음을 읽고 있던 중,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수난 구절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속 읽어내려 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는 구절에서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나 위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셨는데... 내가 의심 많은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 용서해주세요.”

방언으로, 우리말로 한참을 울며 기도했다. 의심의 구름이 완전히 걷히자 마치 하늘을 날 듯 마음이 가벼웠고, 가슴에는 무언가 꽉 차오르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는 목사님께서 “예수님이 너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설교만 하시면 눈물이 어찌나 흘러내리는지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를 바꾸신 하나님
예수님이 나 때문에 죽으신 것이 확실히 믿어지자 생활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일주일이면 두세 번씩 친구들과 만나고, 밤새워 수다 떨고 놀아야 직성이 풀리던 습관이 완전히 없어졌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충성하느라 세상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또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즉각 응답하시니 정말 놀라웠다. 나도 전도하고 싶다고 기도했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옆집 할머니를 전도하게 해주셨다. 또 교회에 가려고만 하면 멀쩡하던 아이들의 몸에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기침하고 울며 보챘지만 예배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라 절대로 빠질 수 없어서 “하나님 제 아이들 지켜주세요”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뚝 떨어져 있기를 수십 번. 수두로 두 아이 모두 열꽃이 만발했을 때도 믿음으로 기도모임장소에 나가 간절히 기도했더니 거짓말처럼 그 날 중에 열꽃이 단 하나 남김없이 사그러 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흰돌산수양관 성회가 열리자 남편의 허락을 얻어 3박 4일간을 상주하며 충성하던 중,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남편도 다시 이 성령충만한 교회에 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눈물 뿌려 기도하자 성령께서 남편과 함께 금식하게 해주셨다. 금식 다음 주간엔 남편이 10여 년간 자신을 가로막던 육신의 생각을 이기고 성령 충만한 연세중앙교회로 돌아왔고, 목사님과 사모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마음껏 신앙생활하게 되었다.

작은 모퉁이 돌이 되어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바칠 것 없어 이 몸 마칩니다”라는 찬송가는 어찌도 그렇게 내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성령충만한 연세중앙교회를 오해하여 귀한 세월 방탕하던 나를, 그리고 남편을 다시 불러 주셔서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고, 성령 안에서 소망 가운데 충성하게 하신 하나님.
연희동, 망원동, 노량진 시대를 지나 궁동시대에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대성전 건축에 작은 모퉁이 돌 하나라도 쌓아 하늘의 상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임를 생각할 때, 남편과 나는 가진 것은 모두다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고 싶다. 궁동 인근으로 이사하던 날, 남편과 나는 성전을 바라보고 한없는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대성전이 완공되는 날, 예수 믿지 않는 부모 형제 이웃이 함께 예배드릴 것을 생각하며 벅찬 가슴을 쓸어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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