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홀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다. 40년간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약속의 땅 앞에 섰지만, 그들 앞에는 넘실거리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때는 보리 추수기였다. 평소에도 깊은 물살을 자랑하는 요단강은 추수하는 시기를 맞아 언덕까지 넘칠 만큼 범람했다. 해수면보다 무려 393미터나 낮은 곳에 있는 요단강과 거대한 벽처럼 솟아오른 물결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수3:7). 홍해를 가르신 그 하나님이 요단강 앞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이었다.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그림자 아래서 그를 따라가는 것과, 홀로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더구나 눈앞의 요단강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수3:8).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무모한 명령이었다. 잔잔한 물가도 아닌, 범람하여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거센 물살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험 속으로 먼저 보내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친히 앞서 가셔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신 후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이는 마치 목자가 양 떼보다 앞서가 길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우리 인생에도 넘어야 할 요단강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범람하는 물처럼 우리를 압도하고 두렵게 만든다. 여호수아처럼 이 싸움의 진정한 주체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참된 안식과 승리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싸움에는 패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권 자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믿음이란 보이는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여호수아처럼 큰 장애물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첫발을 내디딜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것이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