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바이블아카데미(YBA) 연세성경학교 계절학기 로마서 통독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등록날짜 [ 2026-08-25 10:54:01 ]
<사진설명> 연세성경학교 계절학기에서 윤대곤 총괄상임목사가 강의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월) 개강해 로마서를 읽어 가면서 ‘구원의 이해’를 주제 삼아 강의를 진행했다.
<사진설명> 로마서 통독 계절학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윤대곤 총괄상임목사.
2026 ‘연세성경학교 여름 계절학기(로마서 통독)’가 8월 17일(월)~19일(수) 사흘간 월드비전센터 4층 코이노니아홀에서 진행됐다. 계절학기 기간에 윤대곤 총괄상임목사는 월~수요일 오전(9시30분~12시)과 오후(1시~4시)에 총 여섯 차례 강의를 진행했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인 ‘로마서’를 읽어 가면서 ‘구원의 이해’를 주제 삼아 ‘구원의 원리와 구원받은 자의 삶’에 관해 강의했다. 계절학기를 수강한 연세가족마다 강의를 듣고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확실히 알았다고 고백하며 구원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전해 주어 소개한다.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 삶
| 조혜림(79여전도회)
교구식구들과 마가복음 통독 강의를 들을 때 ‘율법주의’와 ‘복음주의’에 관해 배웠으나, 이번 로마서 통독 강의를 들으며 더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막연히 무서워하거나 나를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단정 짓고 살았는데, 하나님이 어떠한 마음으로 날 지으셨고 죄짓는 나를 여전히 참아 주고 기다리고 계신지 로마서 말씀에서 가득 느끼며 큰 은혜를 경험했다.
특히 총괄상임목사님 강의를 들으며 예배드리러 오는 내 믿음의 현주소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기보다, ‘그냥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까’라며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러 오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뜨끔한 것이다. 로마서 통독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는 어떠한 마음과 다짐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지 더 깊이 알게 되어 감사했다.
한 가지 더 간증하자면, 이번 통독 강의를 듣고 로마서를 깊이 있게 읽기 전에는 성경이 딱딱하고 재미없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통독 강의를 들으며 성경을 읽자 성경 말씀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활자 속에 담긴 생명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하는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구절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랑 멀게만 느껴지던 사도들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성경 말씀이 한결 가까워진 듯했다.
계절학기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 더 겸손하게 신앙생활 할 것을 마음먹었다. 항상 하나님을 내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 깨달았다. 나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 되게 여기며 교만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당하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매일 애절하게 기도하셨는데, 죄인인 나는 의로운 척하고 육신에 속해 있으면서도 거룩한 척했다. 내 육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님을 매일 의지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고 작정했다.
로마서를 통독한 후 사복음서도 여러 차례 반복해 읽으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느끼며 부족하나마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 싶다. 신앙의 기본을 잘 쌓아 내 믿음을 견고한 반석처럼 다지고 싶다. 복된 강의를 마련해 주시고 복된 신앙생활의 방향을 잡아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성경 말씀을 볼 눈이 활짝 열려
| 이소미나(풍성한청년회 임원단)
로마서를 읽을 때 논리적·이론적인 접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하나님께서 전적인 주권으로 베푸신 은혜와 역사를 되새기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나의 처지를 잊은 채 교만하게 살아왔는지도 회개할 수 있었다.
특히 “하나님과의 사이가 가깝고 친밀하다면 육신의 소욕도, 핍박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 매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다가온 핍박의 시대에도 끝까지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또 임원단 직분자로서 어떠한 충성과 행사를 진행하든 청년회원들이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도록 돕고 싶다. 복된 강의를 마련해 큰 은혜 주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9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