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원 간증1

등록날짜 [ 2004-01-16 18:01:38 ]

2002년 8월 어느 토요일.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하려고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상경했다. 처음 서울에 온 날 이발소를 찾아다니던 중 신입국 서진아 누나를 처음 만났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모두가 낯설었던 나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 온 진아 누나. 그런 진아 누나의 전도로 다음날 주일 나는 교회란 곳에 가게 됐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보는 곳! 교회. 그것도 연세중앙교회.

첫날 예배드리면서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찬양하는 선교단도, 강단에서 절규하듯이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왜 저렇게 애타하시는지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아휴, 올 곳이 못 되는군.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하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입국의 어떤 예쁜 자매가 내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다. 그 손에 붙들려 간 곳은 신입국.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친절했다. 닭살이 돋을 만큼. 나는 그때 확실히 마음을 굳혔다. 정말 정말 다시는 안 온다고.

며칠 뒤 신입국에서 만난 주희 누나에게서 밥 같이 먹자는 연락이 왔다. 서울에 올라와서 외롭고 적적한 마음에 밥이나 먹으면서 술 한 잔 사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만나자 마자 “기도 합시다.” 이러는데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술의 ‘술’자도 못 꺼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신입국 혜란 부장님이 과거에 가위에 눌렸던 적이 있었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나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위에 눌리며 살아왔다. 집에서 낮잠을 자는데 잠결에도 기분이 오싹해져 눈을 떴더니 화장대 위에 하얀 옷을 입고 머리를 다 풀어헤친 어떤 여자가 앉아있었다. 너무 놀라 도망가려는데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부르는데 입만 빠끔빠끔 거리고 아무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그냥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순간에 깨었고 그 후로도 계속 가위에 눌리기 시작해 어느 때부턴가는 그것이 일상생활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군대에 가게 됐고, 군대에서 유치장에 근무하면서 유치생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가위에 눌리는 정도는 점점 심해만 갔다. 어느 날 밤엔 자다가 눈을 떴는데 턱이 위아래로 치아가 부딪칠 정도로 “탁탁탁탁...” 떨리고, 고개는 좌우로 제멋대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깨달아졌다.

‘아! 이젠 간질까지 걸렸구나!’

혜란 누나에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나의 처지를 고백했더니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보라는 것이다. 그 후 며칠 뒤 낮잠을 자다가 또 가위에 눌렸다. 들은 것이 있는 터라 “예수의 이름으로 떠라가라”고 외쳤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슴속에서 까만 무엇인가가 기어올라 왔다. 그 형체는 순간에 목을 타고, 얼굴을 타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부터 머리가 무겁고 아프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본능이었을까. 순간 나는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철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목사님을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나의 생활도 조금씩 하나님의 간섭 가운데 살게 됐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고 성전 밖을 나가면 머리는 더 아팠다. 입술을 깨물 정도로 머리가 아플 그 때쯤 추석성회가 있었다. 추석성회에 가서 말씀을 듣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시구나. 예수는 내 구주구나.’

성회 시간 시간마다 이 생각이 나를 장악했고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느라 내가 두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잊고 살고 있다.

은혜 받고 돌아온 노량진.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주마등처럼 나의 철없고 방탕한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술 마시고, 돈 뺏고, 그 돈으로 놀음을 하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싸움하기를 밥 먹듯이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나의 생활엔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 폭력 주동자로 신고가 들어왔다며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신고자가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고, 나는 점점 악랄해져만 갔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아니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몰랐으니까 9년 동안 그렇게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신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목에 뭐가 걸린 듯 저려왔다. 나 때문에 잠 못 이루셨을 부모님께 이제 두 다리 쭉 펴고 주무실 수 있도록 잘해야겠다고 뼈에 사무치도록 다짐했다.

“주님! 부모님께 걱정만 안겨주었던 제가 이제는 천국을 선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구원할 전도사로 저를 세우신 주님! 맡겨진 모든 일에 충실하며 받은 은혜 감사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규호가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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