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나는 1954년 전남 강진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생후 두 살 때, 500여 가구 되는 한 동리에서 70여 명이 소아마비에 걸려 여럿이 죽었고 나는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중증 장애자가 됐다. 아버지가 교편생활과 동리 이장 일을 하셨으며 제법 부자 소리 듣던 집안이어서 일꾼들의 등에 업혀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중학교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지체 장애자의 한스러운 현실을 절감하며 인생 비운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특히 넉넉한 가정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관심하게 방치한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또한 형과 동생마저도 미웠다. 그들은 자유롭게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자신들의 장래의 꿈을 마음껏 펼칠 배움의 기회를 가지는데 나는 왜 한심하게 방구들이나 짊어지고 뒹굴어야 하는지. 그래서 술만 마시면 부모님이고 형제들이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때론 낫으로 형님을 내리치기도 하면서 울분을 터트리다가 17세 때 장애의 몸으로 가출을 하고 말았다.

장애를 가진 꼴통 인생
7년간 객지를 떠돌며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스물두 살 때인 1976년도에 가구 조각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 천호동으로 왔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형님은 큰 기업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는데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형수가 장래를 위해 기술을 배우라며 친구 남편이 운영하는 농방을 소개해준 것이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기에 낮에는 착실히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밤만 되면 의지할 데 없는 몸, 천호동 주위의 고향 후배며 공장 후배들과 뭉쳐 다니며 생활했다. 내 가까이서 수족과도 같이 나를 따르던 아이들은 주로 주먹 꽤나 쓰는 천호동 깡패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늘 뭉쳐 함께 지내며 술을 마셨고, 함께 인생의 울분을 터트리며 살다보니 어느새 내 인생엔 ‘누구도 해볼 수 없는 꼴통’이란 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랬다. 세상에 겁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꼴통 인생, 그것이 바로 삼십대 중반까지 내가 그려낸 비참한 나의 자화상이었다.

기도대로 건강한 아내를 주신 하나님
20여년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진정 내 사람이라고 할 여자가 없어 결혼이 늦어졌다. 비록 장애의 몸이었지만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기에 불같은 내 성격과는 반대로 순하고, 육신은 나를 대신할 건강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자 집사님 한 분이 성경책을 사주며 예수 믿으라고 하기에 몇 번 교회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양쪽 손엔 목발을 짚어야 했기에 성경책을 가져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술만 먹었다 하면 나도 모르게 엎어져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 기도를 했다. 어릴 적, 무속과 불교가 세던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예수 믿던 큰어머니가 늘 집안에서 기어 다니던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이셨던 말씀이 있었다. “영석아 예수님 믿어라, 꼭 교회 다녀라” 그 간절한 말씀이 씨가 됐는지 내가 하나님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게 될 줄이야.

“하나님, 건강한 여자를 주십시오. 성경책 들려서 교회 잘 다니겠습니다. 제발 제게 건강한 여자를 주십시오!”

남들처럼 배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한 육신을 가진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라고는 소아마비 장애의 육신, 못된 성질, 오랜 방탕 생활 가운데 피폐해질 대로 피폐한 몸과 마음,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었던 내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첫눈에도 세상 때 묻지 않은 순진하고 건강한 여자와 선을 보게 되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술 담배 하지 않는 착실한 사람이라고 속이고, 결혼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린 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서 술 담배는 물론이고 천호동 후배들과 밤늦도록 뭉쳐 다니면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가 버렸다.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갔지만
결혼 전과는 완전히 돌변한 나의 행동에 기가 질린 아내는 말 한마디 없이 숨죽인 듯 살더니 2년 만에 화병을 얻었고 네 번이나 유산을 하고 말았다. 점을 쳤더니 조상귀신들을 달래줘야 한다기에 수백만 원 드는 굿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딸 경희가 태어났을 무렵, 아내가 느닷없이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다.
처녀 시절에 예수를 믿었는데 시집와서는 무슨 일만 생기면 귀신을 달랜다며 굿을 해대는 통에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거였다. 내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아내가 교회문제 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잠도 안자고 교회로 달려가 기도해대니 하는 수 없이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갔다. ‘건강한 여자주시면 성경책 들려 교회 다니겠습니다’ 했던 기도대로 된 것이었다.
한번 교회 다니기로 마음먹었으니 주일날 예배에 빠진 적이 별로 없었지만 내 생활에 변화는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에게 술주정하고 주일날은 토요일 밤부터 교회에 가기 직전까지 술주정을 해댔다. 나이 사십 줄에 앉았으면서도 여전히 천호동 후배들과 어울려 경찰서에 들락거렸으니 누가 봐도 제 정신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러다가 술 때문에 죽든, 사고로 죽든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연세중앙교회에서 변화의 물꼬를 트고
결혼한 지 8년여가 되던 1995년 어느 주일날 아침, 그날도 아내는 나의 술주정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고 싶은 심정으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연세중앙교회라고 했다. 처제가 다니는 교회인 줄은 알았지만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그곳의 도로가 아내의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으리라.
아내는 예배드리는 중에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잔잔히 다가온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가 빠져나가는 시원함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그 다음 주일날 아내는 나를 자동차에 태우고 연세중앙교회 쪽으로 향했다. 내가 처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던 날, 나는 난생처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그날 이후 단 한번도 밤새워 술주정하며 아내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고 경찰서에 들락거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햇수로는 수년째 교회를 다녔지만 믿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그 후 말씀을 들을 때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잘못된 삶의 태도들이 하나하나 지적되어지니 지난날의 나의 삶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8살 때부터 피워서 도저히 끊을 수 없었던 담배,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술을 끊을 마음도 생겼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술 담배로 시커먼 속을 가지고 가는 것이 죄송하고 부끄럽고 목사님 뵙기도 두려웠다. 그러다가 흰돌산 수양관 성회를 계기로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이젠 집, 교회, 직장 외에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천호동 후배들과의 20년 관계도 정리하게 되었다. 신앙생활에 전념하니 늘 살기가 등등했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고, 칼 같고 불같던 성질도 완전히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다. 정말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시고 계시는구나 싶으니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 주를 위해 살고픈 마음뿐
사돈의 팔촌까지 소문날 정도로 꼴통인 내가 놀랍게 변해버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석이가 변한 것을 보니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다”고 했다. 정말 나란 존재는 연세중앙교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꼭 죽었을 사람이다. 술을 마시다 죽었든, 개망나니 짓을 하다가 죽었든 꼭 죽었을 사람이다. 윤석전 목사님을 만나서 살아온 하루하루의 삶의 과정이 너무 감사하다.
지금도 나는 예배 시간 시간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하며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내가 주님의 품안에 꼭 안겨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요즈음 나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예전의 나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 아직도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며 고통 받고 있는 천호동의 후배들, 그리고 고향친척 친구들이 모두 예수 믿어 구원받는 것이다. 나도 꼭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영혼들을 전도하여 구원했으면 한이 없겠다. 아직도 나 자신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한 것이 많아 너무나 죄송하다. 나의 남은 인생을 오직 주를 위해 살기를 원한다. 갚을 길 없는 하나님의 사랑, 비록 연약한 육체지만 죽기까지 주를 위해 충성하며 살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