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적 치유

등록날짜 [ 2005-07-05 14:02:32 ]




대인기피증
상처를 받고 살아 온 사람들 중에는 대인기피증세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나도 어릴 때부터 대인기피증세가 심했다. 어머니가 오랜 세월을 투병 생활하셔서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결국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혹시 누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늘 혼자 지내다보니 내성적이고 우울한 아이로 자라났다. 몇몇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대화를 단절했다. 속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뻔히 알지만 먼저 화해할 줄을 몰랐다. 그럴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우울증 치유
전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고향 친구들이 다니고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처음 간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예배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날 운 것이 너무나 창피해서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2개월만에 다시 나간 교회에서 나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만났다.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내 영혼 속에 밀물처럼 밀려오자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며 은혜를 받았다. 그러다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신경성 근육 두통과 우울증, 대인기피증세가 말끔히 사라지고 성격도 밝아졌다.

남편과의 갈등
그렇게 충만한 은혜 생활을 한 지 일년 만인 1996년에 결혼을 했다. 연세중앙교회에서 예수를 만나 단번에 변화되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지금의 남편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여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남편과는 성격과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매사가 너무나 달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다혈질인 남편은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면 불같이 화부터 냈다. 그리고는 성격대로 곧 화가 풀어져서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이미 상처를 깊게 입은 내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치유 되었던 우울증세가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임신 중에는 남편이 이름만 불러도,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자지러지게 놀라곤 했다. 몇 년째 성격차이, 사고방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받다보니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이혼하자’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품으시는 주님
하지만 이혼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차마 실행하지는 못하고 수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젠 정말 이혼한다며 내 발로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를 가져오기도 하고 나를 못 이겨 며칠씩 가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나를 붙들어 주셨다.
한번은 무더운 여름철에 둘째 아이를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도를 했다.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남편을 변화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은희야, 내가 너를 다 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어미 닭이 달걀을 낳아서 병아리를 만들기까지 그 고생하며 고열로 품지 않더냐, 나는 너를 그렇게 품는단다.’

주님께서는 병아리를 품는 어미 닭의 심정으로 그렇게 애타게 내가 신앙 안에서 성장하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교만을 버리고
그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부화되지 못한 알이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마음의 고난을 당하며 살아야 하나요?”
울부짖던 내게 하나님께서 성경 한 구절을 주셨다. 예배 시간에 신명기 8장 2절의 말씀을 합독할 때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사십년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는 말씀 중 ‘너를 낮추시며’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아, 나를 낮추시기 위한 고난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고난에서 벗어나려면 낮아지기는 낮아져야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사실 나는 누구도 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나보다 먼저 믿었는데... 나보다 직분도 높은데...?”
누구를 보든 늘 비판과 판단이 앞섰다. 그래서 비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을 내 삶에 이루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분량
한번은 기도 중에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의 분량을 잠시나마 체험하고는 얼마나 통곡하고 울었는지 모른다. 주님은 그토록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는 왜 내 남편조차 사랑하지 못하는지!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와서 희한한 체험을 했다. 기도하러 가기 전만 해도 죽도록 미웠던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 나 같은 것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조건 없는 그 사랑이 바로 이런 거구나! 원수도 사랑하시는 사랑이 이것이구나’
남편이 그렇게 사랑스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조건 없는 사랑은 잠시뿐, 그때처럼 진실한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원상복귀. 또 다시 사랑 없이 바싹 메마른 심령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축복의 과정
교회에서는 이런저런 직분을 맡아 거룩한 척 했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혈기와 자존심과 감정을 앞세웠고, 남편과의 다툼은 그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영적 육적으로 갈팡질팡하는 동안에도 교회는 날로 성장하여 궁동 대성전 건축의 꿈에 부풀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 싶은 소원이 일어났다. 내게 감동 주신 예물만큼 남편에게 동일한 감동을 주시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응답됐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작정분을 다 드리던 날, 집에 돌아오자 강한 성령의 감동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두 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입에서는 감사가 넘쳐났다. 비록 작은 예물이지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고 입술에서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꼭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셔야 해요! 꼭 축복해 주셔야 해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
3-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가 요즘 통 안 싸우고 사네? 벌써 서너 달이 넘었는데...”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10년 동안 그렇게도 싸우며 산 우리 부부가 아닌가? 그제야 깨달아졌다.
‘아, 성전 건축의 복이 이미 우리 가정에 임하였구나’
그러고 보니 불같기만 하던 남편의 성격도 온유해졌다. 그간 남편도 새벽예배와 부부세미나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변화되기 위해 수없이 몸부림쳤다고 고백한다.
요즘 나는 남편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남편처럼 강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인 교만, 자존심, 자만 등, 내 안에 있는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해 나를 변화시키려 기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진정으로 하나가 됐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역시 전능하시다.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그 고난의 시간동안 나를 낮추어 주시고 하나 되게 하셨다.
지금 우리 부부는 진정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산다.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진실하게 하자고, 세상 것은 보지 말고 오직 주를 위해서 살자고 서로에게 믿음으로 힘과 용기를 준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남편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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