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96)] 사도 요한의 말년이 담긴 곳, 에베소
터키 편

등록날짜 [ 2012-01-10 13:56:43 ]

성경 저자 요한과 누가의 무덤 있는 곳
마리아도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냈을 것


<사진설명> 사도 요한교회 유적. 교회당은 길이 130미터, 폭 40미터 크기로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었다. 교회는 회중석이 세 군데 있고, 중앙 회중석은 큰 반구형 지붕 여러 개로, 나머지 회중석 두 개는 작은 반구형 지붕 다섯 개로 덮었다. 중앙 지붕과 교회당 중심 부분은 사각기둥 네 개가 떠받들고 있다.

사도 요한교회 유적
사도 요한은 로마인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직전에 에베소로 옮겨와 에베소교회 감독이 됐고, 그 지방 다른 교회에 대한 관할권도 있었다. 그러다 도미시안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대에는 밧모 섬에 유배됐다가 풀려 나왔다. 요한도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뻔한 위험을 수없이 겪었지만 주후 100년경에 에베소에서 평안히 죽었다.

요한의 무덤은 아야술룩 언덕(신 에베소) 중앙 기슭에 있다. 요한의 무덤 위에는 조그마한 교회가 있었으나 주후 6세기에 유스티니안 황제가 이곳에 다시 웅장한 교회를 세웠다.

교회당은 길이 130미터, 폭 40미터 크기로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다. 교회는 회중석이 세 군데 있고, 중앙 회중석은 큰 반구형 지붕 여러 개로, 나머지 회중석 두 개는 작은 반구형 지붕 다섯 개로 덮였다. 중앙 지붕과 교회당 중심 부분은 사각기둥 네 개가 떠받들고 있다.

사도 요한의 몸은 교회 중앙 마루 밑에 있는 방에 안치됐다. 요한의 무덤 근처에 있던 샘물과 무덤에서 나오는 재 같은 먼지에 치유 능력이 있다고 하여 병자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기독교인에게는 순례지 중심이 되었다.

셀죽크 성채는 사도 요한교회 북쪽에 인접한 높은 언덕에 있다. 성채에는 탑이 열다섯 개 있고 그 안에는 교회당과 이슬람 사원이 각각 하나씩 있으며 물탱크가 여러 개 있다. 전승을 따르면 세상이 잘 내려다보이는 이 성채에서 요한이 요한복음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에베소교회는 어느 곳에 있는 교회인지 정확하지 않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에베소교회가 어딘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요한의 무덤이 있는 지역에 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요한교회의 유적을 일곱 교회 중 하나로 취급하기도 한다.

누가의 무덤
누가의 고향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4~5세기 신학자 제롬은 누가를 ‘안디옥사람 누가 의원’이라고 불렀다.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바울과 동행한 최후의 동역자였다(딤후4:11).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으며, 주후 100년경 74세에 순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무덤이 어느 곳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구 에베소 변두리에 누가의 무덤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초라하게 서 있다. 이 표지판 기록을 보면, 로마시대 때 이곳에 신전이 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 와서는 예배 처소로 사용했다. 주후 1860년 영국 고고학자 우드(T. J Wood)가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십자가와 황소 모양의 비석을 발견해 누가의 무덤으로 판명했다.

마리아교회 유적
오늘날 구 에베소에는 마리아교회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주후 431년 데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3차 공회 장소로 추정한다. 당시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해 양성(신성과 인성) 논란이 있었다. 에베소 공회의에서는 양성을 인정하는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했다.

구 에베소 유적을 돌아본 후, 누가의 무덤에서 출발해 고갯길을 따라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산을 넘어가면 마리아의 집이라고 전하는 작은 교회(비잔틴 시대 완공)가 있다. 마리아 집 입구에는 터키 한인회에서 안내 표지판을 세워 놓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마리아가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냈던 것으로 추정한다. 요한복음을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요한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다시 마리아를 가리키며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고 했다(요19:26~27).

에베소에서 마리아 무덤을 발견한 적은 없지만, 고고학자들의 증언을 따르면 에베소에서 거처하던 집에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통치 하에서 혼란을 거듭하던 시대 상황으로 보아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거처하기가 곤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요한과 함께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죽은 후 에베소에 묻혔다는 주장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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