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수

등록날짜 [ 2004-06-22 10:33:07 ]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인물, 사건들은 모두 예수를 말하기 위함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속사역이 시종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천지창조를 시작으로 침례 요한의 예수를 향한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로다’라는 외침을 거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까지 성경은 시작도 예수요 끝도 예수이다. 구약 전체가 메시아로 오실 예수를 말하고 있다면 신약 전체는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를 말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 요한은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라는 고백으로 그 은혜의 풍성함을 표현하였다. 한마디로 예수에 대한 정보의 홍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설교를 통해 ‘바다 속의 멸치가 목말라 죽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처럼 풍부하다 못해 넘쳐 나는 예수의 은혜를 앞에 두고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진 풍파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쉼을 얻지 못한 채 평생을 영혼의 갈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처절한 죽음 앞에서도 끝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다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이와 같이 죽어가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이 바로 그 모습 아닌가?

예수가 없는 삶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죄의 종 노릇을 하는 삶이다. 비록 육체로서의 목숨은 있으나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명은 없다. 육체의 자유는 있으나 영혼의 자유는 없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 인간에 대한 확실한 하나님의 처방이요 해결책이다.

추수의 계절 가을이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없다’는 말씀이 마치 ‘예수의 은혜는 천지를 진동할 만큼 넘쳐 나는데 그 은혜를 추수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들려진다. 혼탁해진 세상 속에서 넓은 길을 두고 예수라는 좁은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간없다라는 한마디로, 예수라는 하나님이 베푸신 최고의 축복의 잔치를 거절하고 있다. 거리에서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

성전 미문 앞에서 손을 벌리며 금과 은을 구걸하는 거지를 향해 ‘나는 네게 줄 은과 금은 없다. 내게 있는 것은 예수밖에 없다. 그 이름을 준다.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는 베드로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시대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은과 금이 아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이 절실히 요구될 뿐이다. 내 일생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은 예수 밖에 없다’라는 한마디만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리라. 나는 그것으로 감사하리라.

위 글은 교회신문 <1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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