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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위해 기도하게 하신 주께 영광
등록날짜 [ 2011-05-24 14:32:35 ]
솔로몬 왕 시대 견고한 요새였던 하솔
로마시대까지 제단으로 사용했던 텔 단
<사진설명> 솔로몬 왕 당시 요새였던 하솔 지역 유적
하솔(Hazor)
하솔은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단(Dan)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있다. 므깃도와 함께 해변 길 통로에 있던 하솔은 주위 평지보다 약 40m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성읍이었다. 이곳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였으나 지금은 폐허 유적만 있다. 이곳에는 주전 3000년경부터 도시가 형성돼 20회 이상 건설되었다가 무너진 흔적이 남아 있다.
하솔 성은 남쪽에 있는 윗성과 북쪽에 있는 약간 낮고 넓은 아랫성으로 구분하는데, 성경은 주로 윗성을 배경으로 삼는다.
성경에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 그 왕을 칼로 쳐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다”고 기록되어 있다(수11:10~11). 하솔을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칭했던 것이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하솔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가 철병거 구백 승(乘, 수레)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괴롭혔다. 그때에 여선지자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이스르엘 계곡에서 야빈 군사를 진멸했다(삿4:1~16).
솔로몬 왕은 하솔, 므깃도, 게셀에 견고한 요새로 병거 성을 건축했다(왕상9:15). 하솔에 있는 솔로몬 성문은 그 구조가 므깃도와 게셀의 것과 같다. 오므리 왕(주전 885~855) 때에도 하솔을 견고하게 요새화하였다.
성문 남쪽에 돌기둥이 두 개 서 있는 곳은 저장실로 사용했다. 성안 남쪽 언덕 기슭에는 므깃도에서 만든 것과 비슷한 원리로 건설한 지하수로 터널이 있다. 지하 40m에 있는 물 근원까지 돌을 뚫어 파내려갔다. 입구는 가로가 19m, 세로가 15m인 직사각형으로 벽을 따라 회전하여 수직으로 약 30m 내려가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굴속으로 약 25m 거리에 약 10m 낮은 곳에 물의 근원이 있다.
오므리 왕 때 지은 성은 약 100년 후인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 때에 일어난 지진으로 일부 무너졌으나 이스라엘 왕 베가(주전 752~732)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빼앗겼고 백성은 앗수르로 끌려갔다(왕하12:29). 하솔은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에 무너졌다. 하솔 언덕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면 조그마한 하솔 박물관이 키브츠 안에 있다.
<사진설명> 텔 단 지역에 남아 있는 제단 유적
텔 단의 유적
단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23km 지점에 있으며,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땅의 경계를 말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했으며, 북쪽 끝 지역으로 단을 언급한다(삿20:1;삼상3:20;삼하3:10;17:11;24:2).
현재 단(Dan)에서 북쪽으로 약 2km 지점에는 폐허 유적으로 남아 있는 텔 단(Tel Dan)이 있다. 텔 단은 주전 2500년경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음을 듣고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 밤에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빼앗긴 모든 재물과 자기 조카를 찾아 돌아왔다(창14:16).
단이라는 이름은 창세기에 최초로 언급하였으나 본래 이름은 레센(수19:47) 또는 라이스(삿18:29)였다. 주전 19세기 애굽의 문서에는 투트모세 3세가 점령한 도시 중 하나로 라이스가 기록되어 있다.
본래 단 지파에게 분배한 땅은 남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소라 지역이었다. 그러나 블레셋 침공에 견디지 못하여 이곳 라이스라는 북쪽지방을 점령한 후 정착하면서 지파 이름을 따서 단이라 불렀다(수19:40~46;삿18:29).
분열왕국이 시작될 때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12:25~32). 여로보암을 종교 중심지로 삼아 성벽을 웅장하게 쌓고 성문과 제단을 만들었다.
그 당시 제단은 아합 왕 시대와 여로보암 2세 때 보수해 로마시대까지 제단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유적에 제단 일부가 남아 있다. 유다 아사 왕(주전 908~867) 때에 앗수르의 벤하닷이 파괴한 것을 아합 왕 때 재건했지만, 주전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셋 침공 때와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왕상15:20;왕하15:29).
단은 헬몬 산 밑과 가까워 풍부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수원(水原) 지역이다. 요단강이라는 이름도 단에서 비롯했다. 히브리어로 “단에서 흐른다”는 말이 요레드단이다. 이 말에 연유해 요르단(Jordan)으로 부르며 요단 강의 이름이 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