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전도세미나] 예수 정신으로 영혼 구원 이뤄 내자!
등록날짜 [ 2025-04-28 10:38:15 ]
영혼의 갈망과 기도의 시작
인간의 영혼은 근원을 향한 본능적 갈망을 품고 있다. 메마른 땅이 비를 기다리듯, 우리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갈구한다.
이 영적 갈망이 기도의 첫 출발점이다. 기도는 단순한 신앙생활의 의무가 아닌,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물고기가 물을, 새가 공기를 필요로 하듯 우리 영혼은 기도로써 영적 호흡을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영적 원리이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온전한 기도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흙탕물은 깨끗한 그릇에 담아도 흙탕물일 뿐이다. 잡념으로 가득 찬 내면에서는 온전한 기도가 나올 수 없다. 잡념을 이기는 강력한 방법은 통성기도이다.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을 겨냥할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가야 물이 끓는 것처럼, 응답 받기를 사모하는 열정이 뜨거워져야 하나님을 향해 오롯이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다.
특히 외식 없이 기도해야 하나님께 상달시킬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화려한 언어가 아닌 진심 어린 고백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만남이 시작된다. 기도를 꾸미지 말라. 아이가 아버지께 말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열고 하나님 앞에 다 털어놔야 한다. 화려한 언어와 종교적 표현으로 포장하지 말고, 서툴더라도 진실하게 기도해야 하나님께 닿을 수 있다.
기도의 깊이와 하나님의 역사하심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기도 시작 후 처음 30분은 온전히 몰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 30분은 조금 더 진실해지고, 그다음 1시간 동안은 기도하는 내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매일 두 시간씩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출렁이는 파도와 씨름하다가 심해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여 축복을 받았듯이, 우리도 깊이 있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생명을 바치는 기도는 존재의 전부를 드리는 행위이다. 모세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고백했다(출32:32). 바울은 동족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했다(롬9:2). 아브라함도 소돔을 위해 중보하며 하나님과 대화했다(창18:22~33). 이러한 간절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는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펌프를 사용하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피조물인 인간의 기도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도 기도라는 영적 펌프의 능력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면서도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를 원하신다.
온갖 기도 방해를 극복하는 과정
작정기도 여정은 평탄하지 않다.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에서 2시간씩 기도하겠다고 결단하는 순간부터 여러 도전에 직면한다. 빠듯한 일정, 집중력 부족, 온갖 방해, 당장 눈앞에 응답이 보이지 않아 찾아오는 회의감 등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이는 마치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경험이다. 약속의 땅 직전에 가장 큰 시험이 찾아온 것처럼, 기도의 돌파구 앞에서 가장 강한 방해가 찾아온다.
원수 마귀역사는 우리의 기도를 두려워한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했을 때 영적 전쟁이 일어났다. 그가 기도를 멈추었다면 응답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21일간 계속 기도했고 마침내 하늘의 문이 열렸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적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해한다. 졸음, 잡념, 갑작스러운 사건사고, 의심의 생각들이 몰려온다. 이는 기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이를 가르치셨다. 시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성(城)은 쉽게 함락되지만, 매일 2시간씩 기도한다면 우리 영혼의 성벽은 강화된다. 왕국 지붕을 거닐던 다윗 왕처럼 유혹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지만, 기도하여 영적으로 무장한 마음은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부르짖는 기도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엘리야도 간절히 부르짖어 불을 내리는 응답을 받았다. 형식적으로 중얼거리다가 말 게 아니라,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르짖음이 하늘의 문을 연다. 부르짖음은 간절함의 표현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응답 받기를 원한다면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신 말씀은 점점 더 간절해지는 기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기도의 열매와 생명의 변화
지속적인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 마치 조각가가 거친 돌을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 내듯, 기도는 우리의 거친 마음을 다듬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낸다. 2시간 동안의 작정기도는 큰 내적 변화를 가져온다. 평안함이 찾아오고, 혼란스러운 생각이 정리되며, 피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하나님에 근거한 확실한 믿음이 생겨난다.
내면의 성품도 변화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이 빛났듯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빛이 난다. 그것은 외모가 아닌 내면의 빛이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노력해도 안 되던 일들이 기도 후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샘이 근원에서 멀어지면 물이 마르듯, 기도도 응답하실 대상을 잃으면 그 능력을 잃는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기도를 듣고 반드시 응답하신다. 반면 다른 존재나 우상에게 드리는 기도는 참된 응답을 가져올 수 없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온종일 부르짖어도 응답 받지 못했으나, 엘리야의 기도는 즉시 응답 받았다. 진리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기도는 항상 응답을 받는다. 기도는 관계적이다. 친구와의 대화가 그 사이를 깊게 하듯, 우리가 올려 드리는 기도도 하나님과 사이를 깊게 만든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이다. 육체에 호흡이 필요하듯, 영혼에도 영적 호흡인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가 끊어지면 영적 생명도 쇠약해진다. 식물이 시드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메마른다. 반대로 꾸준한 기도는 우리를 점점 더 강건하게 만든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꾸준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인도한다. 기도는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물방울이 오랜 세월 바위에 떨어지다가 결국 그 바위를 뚫듯, 꾸준한 기도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킨다.
2시간 작정기도는 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도끼를 가는 데 시간을 쓴다면, 나무 베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도에 쏟은 시간은 나머지 일상의 효율과 의미를 높인다. 이것이 역설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손해이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가장 현명한 투자이다. 마라톤 선수가 매일 훈련하여 경기에서 승리하듯, 우리도 일상의 기도를 쌓음으로써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한다.
<사진설명> 지난해 작정기도회 마지막 날 모습. 2025년에도 연세가족들은 4월 20일 부활주일부터 6월 8일 성령강림주일까지 ‘연세가족 40일 그리고 10일 작정기도회’에 참석하여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에서 작정기도를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8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