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공의를 이루신 성탄

등록날짜 [ 2004-12-27 15:24:57 ]

요한복음(1:14), 로마서(8: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은혜와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그분은 천지만물을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지으시고 그 만물을 소유하고 다스릴 인간을 지으신 후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의 환경을 만들어 놓으신 후에 아담에게 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만큼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먹으면 죽는 법이기에 먹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곧 은혜와 사랑의 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공의의 법이며 심판의 법입니다. 곧 선악과는 사랑과 은혜의 법이며, 공의와 심판의 법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 곧 영의 사람인 아담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지으실 때 다른 것들은 한번 죽으면 끝이 나는 일회적 존재로 지으셨지만 우리 인간만은 영적인 존재, 곧 영원한 존재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만드셨기에 흙에서 나온 것으로 먹고 마시며 살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8장 3절에도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공의의 법으로 인한 인간의 사망
하나님께서는 아담 홀로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아담이 깊이 잠든 사이에 그의 살과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곧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였던 것입니다. 하와가 그 말을 듣고 보니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생각에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먹는 그 순간에 ‘정녕 죽으리라’는 공의의 법대로 죄의 값인 사망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죄로 인한 마귀의 폭력으로 인하여 인간은 병들고 저주받고 수많은 고통을 죄 아래서 당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우리를 영육 간에 망치는 폭력자인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요일3: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 마귀는 우리를 점령하고 폭력자가 되어 세상에서 병들고 저주받으며 고통 속에 살다가 결국 그 영혼마저 영원히 처절한 지옥으로 끌고 가 처절하고 참혹한 고통으로 영원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마귀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허리 안에 들어있다고 말했던 것처럼(히7:19), 모든 인류는 바로 아담 속에 있었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 속에 있었던 인류는 아담 속에서 아담과 똑같이 사망에 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죄 아래서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마귀의 폭력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사망이 오게 된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육체와 같이 일회적 존재로 있다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영원한 멸망의 지옥의 참혹하고 비참한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한 공의의 법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운명 속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절망입니까?


공의와 은혜의 법을 이루신 예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사랑과 은혜만 가지고는 ‘정녕 죽으리라’는 인간의 처절한 사망의 고통을 해결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곧 죄를 범하는 순간 그분이 하신 말씀을 공의의 법대로 이행하지 아니할 때 어떻게 하나님으로서 우리 앞에 권위를 드러내실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수많은 죄를 지어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간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판사가 사형언도를 받을 만한 죄를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한다면 그 판사도 법의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형수는 판사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법이 그를 붙들어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의의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운 법대로 처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법에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는 사랑과 은혜와 공의와 법을 다 이루셔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무너진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무질서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영이며, 지식의 영이며, 사랑의 영이며, 공의의 영이십니다.
로마서 5장 17-18절에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인류가 죄를 지었으므로 죄 값인 사망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죽어야 할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되셨으니 하나님의 죄값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을 이루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공의의 법대로 인류의 죄 값을 해결하셨으므로 인류를 다 구원받게 하셨으니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법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 곧 사랑과 공의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요1:14).

성탄은 은혜와 공의의 성취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 하나님의 죽으리라고 하는 공의의 법도 이루어지고 우리를 살리는 은혜의 법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성탄하심은 바로 인류구원을 위한 은혜와 공의의 법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법을 이루시고 우리를 그 법에서 건지셨으니 우리는 은혜와 사랑의 법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도 남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의의 법을 이루기 위해 성탄하시고 그 법대로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공의의 법을 이루시기 위해서 참으로 커다란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이사야 53장 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병들게 하고 저주받게 하고 인간이 짊어져야할 수많은 고통을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공의의 법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성탄으로 이루어진 자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입고 고의적으로 이 땅에 성탄 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질 십자가의 사건을 앞에 놓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아들의 부르짖는 절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는 이 절규 앞에 아들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 한 가운데로 들어가 본다면 성탄의 목적이 무엇인지 더 깊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죄로 인한 마귀의 폭력 속에 지옥의 신세를 피할 길이 없었는데 어찌 이렇게 큰 은혜를 입어 이 복을 받았는지, 당장 죽는다 해도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성탄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작품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이 성탄절을 오해하여 오히려 죄를 짓도록 허용이라도 된 날인 양,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 터질 일입니까? 우리는 성탄에 대한 세상의 타락한 시대적 문화와 향락의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탄을 우리 몸에 이루고 소유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법대로 죄로 인해 인간에게 고난을 가하는 원수의 손에서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를 질병의 아픔에서 건져주셨으니 이 시간 당신의 육체에 어떤 질병이 있든지 자유하시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어떤 저주가 있을지라도 이 시간 당신은 그 저주에서 자유 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다 갚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만을 경배합시다.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사랑과 은혜와 공의의 법을 이루신 우리 주님 앞에 감사합시다. 우리 평생 영원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삽시다. 이 시간 마음껏 주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지난날 성탄의 목적을 몰라서 방종했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죄를 범함으로 내 영혼을 학대했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 가운데 타락하며 세상의 쾌락과 향락 속에서 지은 수많은 죄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성탄의 목적을 내게 이루어 평생 아니, 영원히 성탄으로 이루는 영육간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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