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청년회 에스크(ASK) 종강예배
캠퍼스 위해 기도하게 하신 주께 영광
등록날짜 [ 2011-06-15 09:24:54 ]
‘삭개오’ 상징하는 뽕나무 등 곳곳에 많은 기념물 있어
<사진설명> 여리고 시가지에 있는 뽕나무
성경에 등장하는 여리고는 구약과 신약에 각각 다른 곳으로 나타난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던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 최초로 점령한 여리고를 텔 술탄(Tel Sultan)이라고 부른다. 주후 1907년에 발굴한 텔 술탄은 현재의 여리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는 높이 약 22m의 언덕지역이다. 신약시대 여리고는 지금의 여리고에서 남서쪽 1km 지점인(헤롯의 별장 부근) 와디 킬트(Wadi Qilt) 입구에 있다.
엘리야 승천 일화 배경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일화도 여리고를 배경으로 한다. 세 번이나 작별인사를 했음에도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다.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물음에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을 배나 원한다”고 대답했다. 엘리야는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여리고를 떠났다. 엘리야는 요단 강 건너편에 겉옷을 떨어뜨렸으며,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돌아왔다(왕하2:1~14).
여리고에 돌아온 엘리사는 여리고 성읍이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물 근원으로 나아가 소금을 던져 물을 좋게 바꿔주었다(왕하2:19~22). 이 물 근원을 ‘엘리사의 샘’이라 하고, 아랍인들은 ‘술탄의 샘’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많은 물이 쏟아져 나와 농작물 재배에 유용하게 쓰였다.
또 남 유다의 비참한 말로가 여리고에서 벌어졌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군사에게 예루살렘이 둘러싸이자 성을 빠져나와 도망했다. 그러나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하맛의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려갔다. 립나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인 후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에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25:1~7).
신약 성경 속 여리고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왕래하실 때 자주 들르시던 신약시대 여리고는 지금의 여리고에서 남서쪽 1km 지점인(헤롯의 별장 부근) 와디 킬트(Wadi Qilt) 입구에 있다.
이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 강(현재의 여리고 남동쪽)에서 침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조그마한 교회가 있다. 그곳 지명은 ‘베다바라’(Bethabara)인데 요르단 지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국경을 넘어야 순례할 수 있다.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후 시험받으신 곳은 여리고 서쪽에 보이는 시험 산이다. 예수는 시험을 세 번 받으셨는데 첫째는 시험 산 중턱, 둘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꼭대기, 셋째는 시험 산 꼭대기다(마4:1~11). 시험 산 꼭대기 성벽은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쌓았으며, 산기슭에 있는 희랍정교회 소속 수도원은 비잔틴 시대에 세웠다.
또 예수께서는 여리고에서 뽕나무에 올라간 세리장 삭개오 그리고 거지 소경 바디매오를 구원하셨다(눅19:1~10;막10:46~52). 여리고 시가지에는 기념으로 뽕나무를 심어놓았다. 삭개오가 올라갔다는 뽕나무는 돌무화과나무(Sycamare Tree)로 나뭇잎은 뽕나무 잎보다 약간 좁고 길며, 열매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 열매 맛이 참무화과만 못하기 때문에 돌무화과라고 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여리고는 주후 69년경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려고 올라가면서 모두 파괴했다.
엘리사의 샘 북동쪽으로 약 1km 지점에 비잔틴 시대에 지은 유대교 회당 유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을 볼 수 있고, 이 회당 중심부에 법궤 모자이크와 법궤 밑에 있는 원형 모자이크 안에는 유대인의 상징인 메노라(Menorah, 가지가 일곱인 등대로 성막 시대부터 유대인 상징이며,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 상징이다)가 있다. 그 아랫부분에는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의 평화’라고 쓰여 있다. 모세 오경을 넣어둔 제단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지금의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할 당시부터 요르단 통치하에 있었으나 1967년 6일 전쟁 때에 이스라엘 점령지가 되었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중심 도시 중 하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