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여전도회 2024 결산총회
한 해 영혼 구원에 사용해 주심 감사
등록날짜 [ 2023-11-06 11:46:52 ]
마가복음 6장에서는 구약의 선지자보다 더 큰 능력으로 수많은 이적을 나타내시는 예수가 신명기 18장 15절의 말씀을 이루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것처럼, 예수께서도 죄가 무엇인지를 똑같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7장 전반부의 내용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예수께 왔습니다(막7:1). 유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람을 파견할 만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온 유대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에 따라 매우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고,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후대에 전수하는 율법 교사이자 수호자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수호한다는 명목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외식을 책망하며 지도자적 위치까지 위협하는 예수를 율법적 전통으로 책잡아 모함하고자 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때마침 책잡을 일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식사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막7:2). 그들은 예수께 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고 힐난조로 물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무언가 책잡을 일을 발견하면,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며 허물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과 천국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성도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마5:16).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따져 물은 질문에 예수님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구약의 이사야 29장 13절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십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7:6~7).
장로들의 유전에 사로잡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눈에는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이 한없이 더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들이 율법으로 거룩해지겠다고 한 모든 행동이 그들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이란 ‘장로들의 유전’으로서, 당시 성문 율법이던 모세오경을 해설하거나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만든 각종 구전 율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의도로 만들었지만, 점차 성경 율법의 권위와 맞먹게 되었고 심지어는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면서 성경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모든 규칙과 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인간적인 것들로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며 사람의 유전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살피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령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7:8)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이 만든 율례를 지키느라 율례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거룩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은 부정한 것과, 즉 죄와 분리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죄를 정확하게 모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정결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방식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께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대신에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예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7:11).
‘고르반’이란, 예물을 놓고 “고르반”이라고 선언하면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이 되어 더는 사람의 소유권이 미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앙적인 열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점차 악용되었습니다. ‘고르반’이라고 선언하면서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았고, 실제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유용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막7:15~16).
우리가 행하는 모든 그릇된 행동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막7:21~22).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악의 뿌리는 우리 속에 잠복해 있다가 동기가 주어지면 활개를 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결단코 우리를 더럽게 하는 악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잡초를 뽑을 때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얼마 후 잡초가 다시 무성해지듯, 죄도 그 근원인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의 싹이 다시 돋습니다. 우리 마음을 깨끗케 변화시키는 분은 오직 성령이십니다(고전6:11, 딛3:5). 마음속 죄악은 그대로 방치한 채 외적인 청결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을 향한 따끔한 질책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은 상관없이 겉으로만 보여 주는 것, 하나님 말씀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행하는 것이 죄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장로들의 유전과 같이 겉모습으로 의를 주장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시며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2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