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 8·下>] 이삭, 믿음의 계보를 잇다

등록날짜 [ 2024-11-26 14:03:14 ]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한 독자로서

예수가 오시는 길을 연 중요 인물

부활 신앙 가진 이삭이 모리아에서

번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한 모습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예표하고 있어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은 이삭에서 복을 주신다. 이삭은 당시 네게브(Negev) 지역의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에서 살았는데, 흉년이 들자 블레셋 땅인 그랄(Gerar)로 이동해 머문다. 이후 이삭은 생애 마지막에 헤브론(Hebron)에 거주하는데,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을 매장한 막벨라 굴(Cave of Machpelah)이 있다. 같은 조상을 섬기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갈등이 심해 막벨라 굴에는 그들이 출입하는 입구가 각각 다르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을 인정하는 현장은 순례자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준다.


이삭이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는 헤브론의 마므레(Mamre). 하나님은 이곳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출생을 언약하셨다(창18:10). 이삭은 마므레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고 예수가 오시는 대로가 그 자손을 통해 열리게 된다.


<사진설명> 헤브론 성읍 자리인 ‘텔 루메이다’ 전경. 텔 루메이다 언덕 아래로 헤브론 시가지가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출생을 언약하셨고, 이삭은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마지막 인생을 보낸 후 그의 자손을 통해 예수가 오시는 대로가 열리게 된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아버지 아브라함이 세상을 뜬 후 이삭은 네게브 광야에 있던 브엘라해로이에서 살다가 그랄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랄은 블레셋 평야에 있는 아주 비옥한 곳이어서 이삭이 농사를 지어 굉장히 많은 소출을 거둔다.



<사진설명> 막벨라 굴 모습. BC 20년경 헤롯왕은 아브라함을 비롯해 믿음의 조상의 무덤이 있는 막벨라 굴을 막고 그 위에 가로 길이 56m, 세로 길이 33m, 높이 15m 규모로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윤석전 목사: 이삭은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인생을 마칩니다. 이삭이 생애 마지막을 보낸 헤브론에 대해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헤브론에는 헤브론 성읍이 있고 그 성읍 옆에 막벨라 굴과 마므레가 3km 반경 안에 다 있습니다. 헤브론 성읍 자리는 ‘텔 루메이다(Tel Rumeida)’라고 불리는 언덕에 있습니다. 그 언덕의 동쪽 기슭에 막벨라 굴이 있고 거기서 북쪽으로 3km 올라가면 마므레가 있습니다. 또 헤브론에는 현지인들이 아브라함의 상수리나무라고 부르는 오래된 상수리나무도 있습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Jerusalem)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므로 답사할 때마다 가장 긴장되는 곳입니다. 헤브론에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남쪽에서 접근해 텔 루메이다를 보는 방법이 있고, 막벨라 굴 쪽으로 들어가서 유대인 지역에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헤브론은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 수보다 각종 사건과 소요가 일어날 때에 전사한 군인이 더 많다고 할 만큼 무척 위험한 지역입니다. 지금도 방문하기 무척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조상 때부터 살아온 지역이라고 여기며 위험을 무릅쓰고 헤브론에서 살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브론과 막벨라 굴 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선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곳에 많은 집이 있으나 인기척이 없고 모두가 피난을 가 있던 상황이 기억에 납니다. 헤브론에서는 아브라함과 관련해 많은 사건도 있었는데, 그 모든 사건이 아브라함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사건이어서 아주 소중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이기 때문에 무척 소중합니다.


이삭은 약점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독자로서 예수가 오시는 두 번째 길을 연 아주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삭의 삶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예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어려운 질문이지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르호봇(Rehoboth)에서처럼 힘들게 판 우물을 주변 사람들이 빼앗으려 할 때마다 넘겨주는 평화주의자 같은 모습이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모리아산(Mount Moriah)에서 이삭을 바치려 할 때 순종한 모습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더라도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고 이삭 역시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부활의 주를 예표합니다. 다시 말해 평강의 왕, 순종의 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족보에 나타난 어느 인물들에게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사신 성품과 사역 그리고 그가 하신 모든 생애가 확실하게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구는 어떤 곳입니까?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영토 전체가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 영토 안에 이스라엘 땅이 아닌, 아직까지 국가로는 인정받지 못한 곳을 팔레스타인 지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늘 영토 문제 때문에 갈등이 심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베들레헴(Bethlehem)도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입니다. 여리고(Jericho) 역시 이스라엘 땅이 아닙니다. 그 외 세겜(Shechem), 헤브론 등 많은 지역을 비롯해 예루살렘도 북쪽과 남쪽의 중앙지역이 대부분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어서 갈등이 심합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실 때 많은 지역이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이며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라고 아시면 됩니다.


▶윤석전 목사: 이삭은 우물 때문에 많은 분쟁을 겪었는데 당시 우물은 어떤 기능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물 부족 국가여서 물을 무척 소중하게 여깁니다. 성경에도 물이 나는 샘과 우물을 매우 중요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샘은 지하수가 지표면을 뚫고 자연스럽게 나온 곳입니다. 히브리어 ‘아인’이 샘을 뜻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 가운데 엔게디(En Gedi)나 엔로겔(En Rogel)처럼 ‘엔’으로 시작하는 말은 샘이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우물은 땅속 물줄기를 찾은 후 인력으로 뚫고 들어가 지하수를 퍼 올려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브에르’는 우물을 뜻하며 브엘세바(Beersheba)처럼 지명 앞에 ‘브엘’이라고 붙은 곳은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우물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물을 찾아야 됩니다. 지금은 땅속의 물 있는 곳을 찾는 기술이나 기계가 발달했지만, 이삭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기술이나 기계도 없이 사람이 손수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또 우물을 파다가 붕괴할 위험도 많습니다. 브엘세바에 있는 고대 우물도 우물 안으로 돌을 던지면 한참을 떨어진 후 물소리가 날 만큼, 그 정도로 깊이 파 들어가야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물 하나를 파는 것은 오늘날 회사 하나를 세워 운영하는 효과와 비슷할 듯합니다. 물을 얻어야 일상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고, 우물에서 나오는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삭 당시의 우물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이삭을 택하신 과정에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이루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은 주님이 오시는 두 번째 발자국입니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대속물로 오신 십자가의 사건을 예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삭은 어딜 가든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샘처럼 솟아났습니다. 풍부한 물 덕분에 이삭은 거부(巨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삭의 우물은 예수 없이 살 수 없는 생명을 말하며, 이삭의 순종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예표합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가 죽으신 구속의 은총이 충만하길 바라며 날마다 하나님 말씀과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얻는 생명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도 그 생명의 힘으로 이기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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