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단정하게 익어가기

등록날짜 [ 2023-02-15 11:42:34 ]

하얀 얼굴에 똑 떨어지는 단발. “예쁘다”는 말도 제법 들었을 ‘윤’은 청년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에 확 띄는 친구였다. 20대 초반 여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조금만 손해 볼 일이 생길 듯하면 한 발 뒤로 빼고, 신앙생활 잘하자는 권면에도 퉁명스러워하거나 까칠하게 구는 그가 내심 참 얄미웠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같은 부에 있었으나 더 친해지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 채로 우리는 한 해 한 해 세월을 마주해 나갔다. 교회에서 오가다가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만 할 뿐, 그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우환에 힘들어한다는 소식만 간간이 전해 들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새 회계연도에 윤이 우리 부서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부서 식구를 모두 사랑하고 품어야 하는데도 명단에 윤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청년 시절 껄끄럽던 기억도 떠올리며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얼마 후 윤을 심방할 차례가 다가왔다.


그런데 가까이 마주한 윤의 얼굴은 내 기억 속 모습과 사뭇 달라 무겁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여전히 앳되고 예쁜 얼굴이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각자의 길에서 인생의 쓴맛도 단맛도 보았고, 그동안 겪어 온 고락이 얼굴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젊었을 때 도도해 보이던 얼굴도 둥글둥글해지면서 우리는 드센 자녀 둘을 똑같이 키우면서 생기는 고민거리를 나누며 나름 20년 지기답게(?)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웃음꽃을 피웠다. 편찮은 시부모 병수발을 담당하면서 그간 남편 챙기랴, 자녀 돌보랴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며 주님만 더 붙들게 됐다는 그의 간증도 마음을 울렸다.


세월이 흐르며 조금은 복된 모습으로 다듬어진 게 어디 남 얘기일까. 극도로 내성적이어서 누구와 말 한 마디 섞기 어려워하고 한번 사이가 틀어지면 한없이 미워하고 냉랭하게 굴던 내가 어떻게 다른 이에게 살갑게 다가가 섬기는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못나고 초라한 청년 시절을 지나 가정을 꾸려 오는 동안 주님께서 그나마 사용하시기 편한 모습으로 나도, 그도 바꿔 주셨으리라.


코로나19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심방에 마음을 쏟고 있다. 영적생활 할 마음이 무뎌진 이들을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있다. 아마 청년 시절의 나라면 회원들에게 심방한다고 찾아가서 “네가 기도 안 해서 그래!”라고, 요즘 애들 말로 투박한 ‘팩트 폭행’을 일삼았을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사랑 없이 모질었던가. 맞는 말이긴 하나,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냉정한 심방, 아니 심판이었을 것이다. 주님 은혜로 회원들 마음도 헤아려지는 요즘은 “제가 더 기도할게요”라고 위로하며 신앙생활도 조심스레 권하게 된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도해 주신다는 말에 힘이 났어요. 저도 기도해 보려고요”라는 회원의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어렸을 때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생각도 깊어지고 아량도 더 넓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쓸데없는 고집만 더 완고해지기도 한다. 10년 후, 20년 후에 하나님이 쓰시도록 더 복된 모습으로 다듬어지면 좋으련만. 막연한 바람이 아닌 실제가 되도록 기도한다.              



/현정아 객원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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