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여전도회 2024 결산총회
한 해 영혼 구원에 사용해 주심 감사
등록날짜 [ 2023-09-30 15:25:45 ]
고린도전서 10장 7~11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죄와 사망,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은 피의 은혜를 기억하고
구원주께 회개하며 돌아가는 것
구원하신 주께 영광 올려 드리고
신령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천국 잔치로 배설하신
생명의 말씀의 잔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모든 만물의 조물주이십니다. 인간은 창조자이신 조물주에게 감히 불순종으로 도전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 아래서 육신의 저주와 영혼의 참혹한 지옥 형벌을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였으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구원하신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지옥 형벌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구원받을 은혜를 주셨으니 곧 진리의 말씀이시요, 진리의 말씀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약속을 이루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인간을 설득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으나 인간은 율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끝내 우상숭배를 일삼고 저주 안에서 멸망하게 되었으니 원인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한 범죄인 것입니다(고전10:7~11).
은혜 베푸신 주님께 돌아가는 회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하라 하셨으니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기억하고 회개할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여 죄악으로 끌려가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속죄하고 구원하신 피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계속 돌아가는 것입니다. 곧 죄와 사망과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회개와 감사로 구원의 주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는 자들은 구원의 주님께 돌아갈 수 없으나, 회개로 구원의 주님께 돌아가는 자들은 자기 영혼이 영원히 살기 위하여 생존하고 싶은 본능으로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아버지의 은혜를 배은망덕하고 오만과 독선으로 아버지를 뿌리치고 떠나갔던 탕자가 아버지의 은혜와 부유를 기억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생존의 본능을 다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15:11~24).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여 세상의 풍속을 좇아 육신의 정욕대로 마귀, 사단, 귀신에게 이끌려 죄와 사망과 지옥의 참혹한 형벌의 현장으로 끌려가고 또 끌려가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 아래서 죽게 된 것을 깨닫고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쏟아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 베푸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축복 넘치는 천국 잔치 성회로 돌아가자
육신을 가진 육신의 사람들은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하여 세상 풍속이 생산한 추석이나 연휴를 육신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거침없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육신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세상 명절의 우상숭배와 연휴를 육신의 요구대로 방종하며 살다가 죄 아래서 멸망할까 봐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러므로 다시는 육신의 요구에 따라 세상 풍속을 좇는 육신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오직 나를 죄와 사망과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 은혜의 감사의 노예가 됩시다.
구원의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내 영혼의 때에 신령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축복이 넘치는 추수감사절의 은혜의 현장, 감사의 현장으로 돌아갑시다. 주님께서 내 영혼을 위하여 천국 잔치로 배설하신 생명의 말씀의 은혜의 잔치로 돌아갑시다.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세상 풍속은 마귀역사임을 절대 잊지 맙시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세상의 모든 것은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피할 수 없는, 내 영혼을 멸망시키려는 유혹임을 명심하고 정신 차려 속지 맙시다.
육신의 절대 분깃은 돈과 명예와 이생의 자랑뿐입니다. 이것들은 내 육신이 끝나는 그 날에 내 영혼의 멸망의 산물일 뿐입니다. 결국은 육신이 끝나는 날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같이 음부에서 내 영혼의 처절한 절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절대 분깃은 세상 육신의 눈으로는 처절한 질병과 가난과 핍박과 조롱뿐이나 누가복음 16장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할 축복의 분깃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세상 풍속으로 유혹하는 육신의 간절한 요구에 속지 맙시다. 주님께서 주시려는 내 영혼의 분깃인 천국을 사모하며 추수감사절과 말씀의 잔치인 성회에 집중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8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