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플러의 신앙과 과학

등록날짜 [ 2024-11-26 13:55:20 ]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

천문학을 연구해 알린 케플러처럼

삶과 일상에서 주께 영광 돌리고

구원의 메시지 전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약 400년 전 사람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별들을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이를 부정하면 ‘이단’으로 처벌받았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생각이 가장 진보된 과학적 사고였지만, 오늘날 관점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무척 많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증명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등은 16세기와 17세기에 천문학과 물리학의 혁신을 이끈 천재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연구를 이어받아 과학 혁명을 이끌었고, 하나님의 창조성을 밝히며 우주에 대한 이해를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케플러는 갈릴레오의 관찰과 뉴턴의 법칙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였고, 이들의 연구는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었다.


신앙의 빛으로 우주를 밝힌 과학자

케플러가 살던 시기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의 유럽이었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이 주도했고, 케플러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성장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강력한 통제 아래 종교 행위와 학문 탐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많은 독일 지역의 권력자인 제후들이 개신교를 받아들이면서 가톨릭의 권위가 약화했다. 이 시기에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 독일 바일 데어 슈타트의 가난한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용병이었고 어머니는 약초 치료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케플러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였고 튀빙겐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생을 천문학 연구에 바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케플러의 천문학 연구는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고 그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귀한 일이었다. 케플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질서 있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으며, 이를 수학과 천문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케플러는 믿음을 지키느라 많은 고난을 겪었다. 1618년에는 루터교회의 신앙 고백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고백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스티리아 지역의 그라츠에서 추방당했다. 이 고백은 삼위일체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케플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요구를 거부했고, 그로 말미암아 직장을 잃고 재산도 처분하지 못한 채 가족과 추방되어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 갔다.


그 후 케플러는 프라하로 이동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에서 수학자로 일했다. 이 시기에 튀코 브라헤의 방대한 관측 자료를 활용해 중요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황제 페르디난트 2세 역시 케플러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요구했고, 케플러는 이를 거부하여 궁정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잃고 큰 고난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는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과학 연구를 통해 창조주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찬양하는 길을 선택했다. 케플러에게 믿음은 단순한 개인적 신념이 아닌, 그의 삶을 인도하는 지침이었다.


케플러는 우주 연구를 하나님을 이해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의 대표 업적은 ‘케플러의 법칙’이며,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법칙은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결과였으며, 하나님이 얼마나 질서 있게 우주를 창조하셨는지를 알렸다. 천문학에서도 혁신적인 발견이었으며,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케플러는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개량해 ‘케플러식 망원경’을 개발했다. 이 망원경은 별과 행성을 더 정확히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오늘날 천문학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그는 ‘루돌프 천문표’도 만들어 행성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했고, 이는 항해와 천문학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천문표는 당시 항해사에게 중요한 도구가 되어 그들이 더욱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도왔다.


연구를 하면서도 케플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 열망은 그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취를 넘어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삶과 일상

우리는 종종 어려움이 닥칠 때 믿음을 지키기 쉽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케플러는 재산과 직장, 심지어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앙을 지켰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의 본질로 여겼고,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굳게 지켰다.


현재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첨단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더 편리하게 했지만, 그 속에서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케플러는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고, 과학적 발견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이 되기를 바랐다.


케플러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다. 그는 가족과 함께 추방당하고 직장을 잃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경외심에서 나왔으며, 과학적 발견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 역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함을 찾고 그분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케플러는 신앙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신앙이 오히려 그의 과학 연구를 더욱 깊이 있게 해 주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세속적인 성공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케플러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창조 질서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감당했다.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케플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그분의 창조와 인류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875호> 기사입니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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